공부란 무엇인가?

완결된 칼럼

공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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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라는 것이 무엇일까? 공부는 왜 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일까? 예전의 현인들은 어떤 정신으로 공부에 임했을까? 옛날 학생들도 요즘 학생들처럼 치열하게 공부를 했을까?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었을까?  

 

공부(工夫) 1. 

옛날 사람들의 배움을 이랬다. 음악(樂), 활쏘기(射), 말타기(御), 글쓰기(書), 셈하기(數)등의 육예(六藝)를 공부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도덕, 음악, 체육, 국어, 수학 등 그야말로 전인교육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학(學)은 '사람됨', 즉 '인간학'을 배운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여기서 사람됨이란 전통적으로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효성으로 부모를 섬기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친구에게 신뢰를 잃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배움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윗사람에 대한 공경과 사람들을 대함에 공손함과 사람들과의 신의와 믿음직스러움이 그 어떤 공부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 기본을 갖춘 다음에 학문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 순서가 바뀐 것 같다. 빨리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조급해 한다.

‘인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인성 타령만 할 것인가? 빨리 빨리 배워야 할 것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그게 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최소한 친구나 동료는 뛰어 넘어야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고졸자의 70% 이상이 대학가서 공부를 하는 세계 최고 학력의 국민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 것 같다. 공부하는 학생도, 등록금을 내주는 학부모도,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나 교수도 즐거워하지 않는다. 가정경제의 빈부는 자식 학력의 빈부를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공부는 더 이상 기쁨의 대상이 아니라 이겨내야 할 대상이 된 것처럼 보인다.

 

공부(工夫) 2. 

공부(工夫)라는 한자는 그 어원에 있어 다양한 해석이 있으나, 공(工)은 물건을 만드는 도구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어른, 지아비를 나타내는 부(夫)는 큰(大) 머리에 상투(―)를 틀어 올린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부란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도구 내지는 학습 과정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시간이 날 때마다 몸에 익힌다면 진실로 기쁘지 않겠는가? 라는 논어의 첫 문장에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학(學)의 글자 모양을 보면 아이(子)가 책상(冖) 위에서 양 손에 책을 잡고 글(爻) 읽는 모양이다. 책을 읽으며 배우는 모양 그대로다. 습(習)은 새가 날개(羽)를 스스로(自) 퍼드덕거리는 모양이다. 백(白)은 원래 스스로 자(自)였다고 한다. 자기 스스로 익히는 것이 습이다. 따라서 공부(工夫)라 하는 것은 훌륭한 성인이 되기 위해 책을 통해 배우고 스스로 익히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공부(工夫) 3.

논어(論語) 위정(爲政)편 제15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생각 없이 배우는 것은 배운다고 해도 그 끝이 허망(罔)하게 되고,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게 되면 그 끝이 위태롭게 된다.   

 

학습(學習)은 배우고 익힘이다. 배움이 공부인 것이 아니라 배움과 익힘이 공부이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배움만 있고, 생각함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망한 일이라고 했다. 배움 못지않게 익히는 일과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배우고 학원에서도 밤새도록 배우기만 한다면 익힐 시간이 없다. 익힐 시간이 없다는 것은 반쪽 공부인 것이다. 반쪽 공부에 학교도 학원도 열을 올리는 것이다. 그 열만큼이나 학생들은 학습열이 식어간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익히는 공부를 해야 온전한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공부(工夫) 4  

책읽기는 사고력을 촉발시켜 생각의 폭과 두뇌를 활성화하는 데 가장 저렴하고 편리하고 손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여기에도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卽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이다. 학(學)을 책으로 바꾸어 보면 자명해 진다. 책을 읽지 않으면 혹은 책을 읽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독서의 결과가 허황되거나 허망한 일로 얻는 것이 없고, 생각은 많이 하나 다른 사람의 책을 읽지 않는다면 위험한 독선에 빠져 위태롭게 된다.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멍청해지고, 사색만 하고 배우기 않으면 정신이 위태롭다.

 

공부(工夫) 5.

운전면허를 따고 어느 정도의 초보 딱지를 떼어 낼 때쯤 되면 운전에 자신이 붇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첫 번째 사고는 바로 그때인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여 어느 정도 익숙하게 되면 업무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첫 번째 사고는 바로 그때인 경우가 많다. ‘학이불사(學而不思)’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배웠지만 깊숙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에는 정리가 유효하다. 처음 배운 업무를 정리해 보는 것이다. 업무 매뉴얼도 다시 점검해 보고 현실과 이론이 얼마나 근접되어 있는가도 확인해보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그 업무가 내 것이 된다. 정리가 어려운 것은 아니나 당장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면서도 번거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 다음으로 미는 것인데, 그 시기를 놓치면 즉망(則罔)이 된다. 금방 허망한 꼴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깔끔한 정리로 마무리를 지어 놓지 않으면 꼭 후회를 하게 된다. 직장인이 업무 하는 시간이 짧아서 역량을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아서 업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를 못하는 것이다.

  

공부(工夫) 6.

삼 년 전 1월 1일을 기해서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지 3년이 넘었다.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불편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 편견이 깨졌다. 아니 자가용을 없애니 대신에 몇 가지 좋은 점이 생겼다. 걷는 시간이 많아져 건강에도 많은 득이 되었지만, 뜻하지 않은 횡재는 오가는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하루에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출퇴근 시간을 합쳐 전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1시간이상이니 독서 시간이 하루에 그만큼 공자로 생겼으니 횡재인 것이다. 일주일이면 한 권 정도는 넉넉하게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책을 읽으면서 공부가 되고 책을 읽으면서 사색이 된다. 책은 배움과 생각을 함께 얻을 수 있는 비밀 상자로 지성과 감성, 그리고 실용에 도움을 준다. 

 

공부(工夫) 7.

한때는 전자 계열 대기업에서 잘 나가던 엔지니어였던 N씨가 있다. 그는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것을 수없이 들으면서 직장생활을 했다. 기술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렵다고들 했지만, 회사 업무에서는 늘 기술의 선두에 서서 달려 나가는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나는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첨단을 가고 있다’ 는 긍지가 있었다. 다른 생각을 깊게 할 필요가 없었다. 출근하면 책상엔 늘 일이 쌓여 있었고 그것 처리하기에도 하루 해가 짧았다. 스스로 무엇인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도 늘 최첨단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다는 긍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스템의 힘이었다. 조직의 힘, 기업의 힘이었지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조직을 떠난 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조직에서 밀려나니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스스로 최첨단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조직을 떠나면서 그것은 모두 물거품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찬란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끝은 허망할 뿐이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퇴직 후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허망한 꼴을 당한 수많은 퇴직자들은 모두 ‘그때 무엇인가를 생각해 가면서 일을 했어야 했다’는 후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재직자들은 생각 없이 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컬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아무리 다르다고는 하나 퇴직이라는 문을 하나 두고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12-02 06:32:14 최종엽의 교육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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