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감 키우기
아이들과 그림을 그릴 때 뭇사람들은 형태를 잘 그려야 잘 그린 그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색의 다양성과 색의 어울림, 풍부함이 배제되어 있다면 촌스럽고 갑갑하고 안타까운 느낌마저 들 곤 한다.
색의 사용은 생활 구석구석에 필요하다. 집 내, 외부의 페인트, 가구, 그릇, 텍스타일, 의류, 액세서리 등등 각자의 삶을 반영하기까지 한다. 풍부한 색 감각을 가지고 절제된 표현을 하는 것과 폭 좁고 제한된 감각으로 미니멀을 앞세워 표현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는 듯 싶다. 무조건 많은 색을 늘어 놓듯 화려하게 사용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색 중에 어울릴 만한 몇 가지를 고른다든가 스스로 약간의 채도, 명도 조절로 색을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하겠다.
제일 쉽게 말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많이 보는 것이다. 자연에 나가 나무를 보면 싱싱함의 유무, 햇빛의 방향, 잎의 면적에 따라 다 같은 초록이 아님을 단박에 알 것이다. 그냥 스쳐 지나지 말고 최대한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사물이나 색을 카메라 찍듯 그대로 뇌가 기억하는 타입의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교하면서 언어로 기억할 수도 있다. ‘저 색은 이 색보다 좀 더 진하고 강한 느낌이네’ 되도록이면 많은 수식어로 되 뇌이면 그 색에 대한 기억과 감각이 늘어난다. 어른이 그런 감각과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과 같이 보며 대화를 나눈다면 일상 속에서 감각 키우는 것이 재미날 수 밖에 없다. 물론 인테리어, 패션 잡지, 아름다운 그림책, 미술 작품을 많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만들어진 물건의 색을 본다는 것은 모방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일 뿐 자연의 미묘한 색으로 인한 독창적 느낌은 크게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많이 보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경험에 의하면, 내가 본 색을 칠해 보는 것이 색을 인증 도장 찍듯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연의 꽃과 나무들, 책 속의 색들, 주변 물건의 색을 그려보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다. 장소, 시간, 빛, 면적에 따라 색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방법으로 페인트 파는 곳에 가면 수십 가지의 색 쌤플 카드가 있다. 우선 모두 수집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색상 영역에 해당하는 것을 10장 정도 가져와 본다. 빨강이라 하면 우리말 표현에도 새빨간, 발그레한, 검붉은, 시뻘건 같은 형용사나 포도주, 피, 사과같은 명사를 사용하듯 색상 카드에도 각 페인트 회사마다 색 이름을 정해 놓았다. crimson, scarlet, carmine 등 기본적 빨강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도 있지만 cherry, rose, garnet, sangria, current 등등 무수히 다양한 색상의 이름들이 있다. 이름과 색의 느낌을 찬찬히 매칭하며 생각 해 보게 끔 이야기 나눈 후 그 카드 색과 최대한 똑같이 칠해 본다. 기본 빨강에 검정이나 흰색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노랑이 아주 살짝 섞였을까? 아님 파랑이?’ 자꾸 시도해 봄으로써 배합을 위한 물감 비율을 인식해 다양한 색을 세밀하게 만들 수 있다.
연령대가 어린 아이들이 삼색- 빨강, 파랑, 노랑-으로 주황, 초록, 보라를 만들고 또 나아가서 흰색을 사용한 명도 변화, 회색을 사용한 채도 변화를 경험한 후 빨강 한 가지 색 속에 다양한 색이 많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한창 색에 대해 관심이 있었을 때에는 나만의 색상 책을 만들곤 했다. 챠트처럼 내가 만든 색 또는 맘에 드는 색상칩을 모아 분류하여 비교하며 사용했다. 물론 각 색상에 내가 지어준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재미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도 좋지만 그 색을 발견한 장소나 이벤트 이름을 붙여줘도 기억에 더욱 잘 남는다.
아이들과의 수업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만든 후 그 색에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모두 모아보면 같은 것이 절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색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도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는 방법이 최선인 듯 싶다.
김경희: abgo.edu@gmail.com
vol.62-0311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