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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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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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감독 최동훈·2015), <밀정>(감독 김지운·2016), <동주>(감독 이준익·2016), <박열>(감독 이준익·2017)등은 모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특정 인물을 시대 정신으로 투영하거나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들을 파헤친 작품들이었다.

 

상업영화는 당연히 손익을 염두에 두고 제작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영화 속의 인물들은 늘 비장하고 웅장하고 영웅적일 수 밖에 없었다.

 

27일 개봉하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도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이고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존의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영화 <강적>(2006), <내 죽음을 알려라>(2009), <10억>(2009) 등을 연출한 조민호(52)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이번 '유관순 영화'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과거 영화감독 윤봉춘(1902~1975)이 3차례(1948·1959·1966)에 걸쳐 '유관순'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든 바 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관객들을 만난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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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3·1 만세운동 이후 고향 충청남도 병천에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울 서대문 감옥에 갇힌 후 1년여의 기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영화다. 

 

독립운동가 이전에 한 명의 보통 사람인 열일곱 소녀 유관순, 3·1 운동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유관순의 이야기, 서대문 감옥 '여옥사 8호실'에서 유관순과 함께한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919년 3월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중고등학교시절 교과서에서 접한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제대로 소개된 바 없다. 1920년 3월1일,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해 '여옥사 8호실'에서 만세운동이 또 한 번 시작되기도 했다.

 

당시 8호실 감옥에는 유관순 말고도 수원에서 30여 명의 기생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한 기생 김향화, 다방 종업원 이옥이,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다가 아들을 잃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만석 모, 갖은 고생 속에서 아이를 키워낸 임명애 등 기억해야 할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했다. 영화는 유관순을 비롯해 시대적 비극에 저항하다 함께 갇힌 여성 30여 명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유관순은 서대문 감옥에서 일제의 고문과 핍박에도 끝까지 신념을 굳히지 않는다. 감형해 주겠다는 일제의 회유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자유란,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는 것"이라고 외치며 끝까지 자신이 죄수인 것을 부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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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감독은 7년 전 우연히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했고, 유관순 사진을 보고 뜨거운 울림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역사관 '여옥사 8호실'을 찾았고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영화화를 결심했다. 

 

조 감독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만세를 외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며 "어두운 시대적 상황에서도 자유와 해방을 향한 뜻을 굽히지 않은 유관순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영화임에도 <항거: 유관순이야기>는 우직하고 미련해 보일 정도로 느린 호흡을 유지한다. 옥사에서 서로를 잘 알지 못해도 마음은 통하는 이들이 어떤 갈등과 역경을 견뎠는지 상상력을 더해 풀어냈다. 3평 남짓 공간에 들어찬 그 여성들 면면을 주목하려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아성(27)이 유관순을 연기했다. 김새벽(33)이 김향화, 김예은(30)이 권애라를 담당했다. 작은 감옥 안에서 일제에 맞선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는 깊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항거한 이들의 용기 있는 외침은 단순한 감동 이상의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유관순의 과거 회상과 가족 장면은 컬러, 옥중 장면은 흑백 영상에 담겼다.

 

지난 15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고아성은 눈물을 보였고, 참여 배우들 역시 무거운 표정이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죄송하다"였다. 특히 고아성은 "겁이 났었다"고 말했다. 그 인물과 그 사건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기에 든 어떤 감정이었다. 연기 이전에 이 배우들은 그 실존 인물 앞에 서야했고, 그들 앞에 작아지는 자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위인이기 충분한 이들이지만 100년 전의 그들은 평범한, 아니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을 존재들이었다. 배우들이 먹먹함과 모종의 무게감을 이겨내고 그때 당시의 평범하면서도 다양한 군상을 오롯이 그려낸 연기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

 

조 감독은 "기존의 유관순 전기 영화는 인간 유관순에 접근했기보다는 한 명의 완성된 인간이자 절대 굴하지 않는 강렬한 삶의 의지를 지닌 인물로 그려졌다"며 "하지만 현시대에 유관순을 그려본다면 한 명의 청춘이 겪은 당대의 어려움, 삶 자체의 시대적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대변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 사람들의 고뇌와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두 가지 지점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역사의 맥락에서 지금까지 약자이자 피해자로 묘사된 여성을 운동의 주체로 등장시켰다는 점 그리고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에 대한 정죄다.

표현 형식과 이야기 전개 방식만 놓고 보면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역사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여성의 업적, 연대를 나름대로 진정성 있게 담아내려 했다는 자체만으로 그 의미가 적지않다. 

 

기교없이 전달한 진실과 진심의 힘이 관객들에게 얼마만큼 다다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상기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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