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책방: 책 읽어 드립니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관리자 0 47 03.05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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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책방: 책 읽어 드립니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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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2일 독일출판협회는 제55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수전 손택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것이 시상 이유였다. 독일출판협회가 잘 지적했듯이, 손택은 첫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1966)에서부터 최근작 <강조해야 할 것>(2002)에 이르기까지 기계로 대량 복제되는 이미지가 한 문화의 감수성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일관되게 추적해 왔다. 

 

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사방팔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여 있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등의 작은 화면 앞에 붙박인 채로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의 이미지를 속속들이 볼 수 있게 해줬다. 그렇지만 이 말이 곧 "타인들의 괴로움을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이 두드러질 만큼 더 커졌다는 말은 아니다."

 

이미지 과잉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 그리고 이렇듯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된다면, 사람들은 타인이 겪었던 것 같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는 것이 손택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손택은 무엇보다 먼저 이 세계를 거짓된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자고, 제 아무리 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제스처가 엿보일지라도 세계를 재현하는 이미지의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아 보자고 제안한다. 따라서, 자신이 예전에 '투명성 Transparency'이라고 불렀던(해석에 반대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우리가 이미지를 통해서 본 '재현된' 현실과 '실제' 현실의 참담함 사이에 얼마나 크나큰 거리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사진은 애초부터 객관적이라는 공인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사진은 언제나 특정한 시점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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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을 쓰고 있을 때 손택은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잔인하게 묘사된 폭력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 현실 인식이 손상된 걸까?" 손택은 스스로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고통의 재현물, 예컨대 전쟁이나 참화를 찍은 사진들을 볼 때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지 분석해 본다. 손택의 지적에 따르면, "고통을 둘러싼 도상학은 기나긴 족보를 갖고 있다." 특히 재현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는 고통은 신이나 인간의 분노가 낳은 것이라고 이해되는 고통이었다. 

 

이런 고통의 재현물(예컨대 고문당하는 순교자나 박해 받는 예수)은 뭔가 교훈을 주거나 본보기를 보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었고, 이런 욕망은 얼마 안가 "사람들은 원래 소름 끼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을 타고났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끔찍함 terribilità 속에 매력적인 아름다움이 놓여 있다", "숭고하거나 장엄하며, 그도 아니면 비극적인 형태로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니, 유혈 낭자한 전투 장면도 아름다울 수 있다" 등등의 주장이 나오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사고방식 안에서는 고통의 재현물이 더 이상 교훈이나 본보기 구실을 하지 못한다. 단지 "병적일 만큼 음란한 정신 상태"의 시각적 등가물이 될 뿐. 현대에 들어와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한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일종의 '포르노그라피'가 되어버리고, 이런 이미지를 보는 행위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일종의 관음증이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군다나, 날이면 날마다 끊임없이 폭력의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현대 사회에 들어와 이미지의 성격 자체는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고, 소란을 불러 일으켜야 하며,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쪽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쉴새없이 이미지가 자신을 드러내는 상황, 한줌의 이미지들이 반복해서 자신을 과잉 노출하는 이 상황을 그밖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돌파할 수 있겠는가?”라고 손택은 반문한다. 이렇듯 이미지 자체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갈수록 자극적인 요소들을 요구하게 되면 이미지들은 타인의 고통을 재료로 사용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타인의 고통은 "소비를 자극하는 주된 요소이자 가치의 원천"이 된다. 바야흐로 오늘날의 문화에서는 이미지가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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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은 프랑스의 철학자 베이유와 영국의 소설가 울프를 좇아서 이렇게 얘기한다. "폭력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숨을 쉬는 생생한 인간에서 사물로 변형되어 버린다"고, 즉 "인간을 하나의 개인으로서, 인류로서 구별케해줄 수 있는 바가 잔인하게 파괴되어 버린다”고. 이 말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에도 들어맞는다. 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양의 이미지가 쏟아지면 사람들은 이런 고통 자체에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한번 충격을 줬다가 이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종류의 이미지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반응 능력을 잃어가게 된다. 연민이 극한에 다다르면 결국 무감각에 빠지기 마련"인 것이다.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中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손택은 "그들의 고통 한 부분에 우리의 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 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나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다." - 수전손택 <타인의 고통>中

 

'연민과 동정을 넘어 공감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 행동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수전 손택의 메시지는 오늘날 수많은 자극적이고 잔인한 타인의 고통을 무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즐길거리로 치부하고 있는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준다. 

이 책은 이미 2003년에 쓰여진 것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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