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토스하이스쿨 한국인 카운슬러 / James Baek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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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토스하이스쿨 한국인 카운슬러 / James Baek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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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토스 하이스쿨에서 카운슬러로 근무하고 있는 James Baek 선생님을 만났다. 푸근한 첫 인상만큼이나 편안하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진지한 열정을 뜨겁게 느낄 수가 있었다.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는 남자.  James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세리토스하이스쿨에 몇 년째 근무하고 계시는 거죠?

이제 8년째 되는 거에요. 근데 그 전에도 여기에서 인턴쉽을 하고 배치를 받았죠. 캘스테이트 롱비치에서 카운슬링 석사과정을 하고 롱비치의 중학교에서 1년, 그 다음 여기(세리토스하이스쿨)에서 1년간 인턴을 했어요. 인턴을 마치고 중학교로 갈 건지, 고등학교로 갈 건지 선택을 하게 되는데, 저는 원래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왜 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나중에 그런 질문도 하시겠지만, 제가 고등학교때 힘든 경험이 많이 있어서 카운슬링에 뜻이 좀 있었는데요, 여기 와서 인턴을 하면서 실제로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느꼈죠. 한인 부모님들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고요. 그래서 디스트릭트에서 인터뷰할 때도 "여기서 내가 이렇게 네트워킹도 많이 하고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니, 다른 사람보다 내가 여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분들의 니드(need)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세리토스하이스쿨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도 (한국 선생님들은 몇 분 있지만 카운슬링 오피스는 많이 없었어요.) 카운슬러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려는 것이고, 여기에서 인턴쉽을 해 보니까 그것이 정말로 reality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욱 더 여기에서 일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뭐 이런 말들을 했는데 그 때문에 디스트릭트에서 저를 받아 준 것 같아요.(웃음) 

 

카운슬러가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웃음) 그걸 정의하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 해야 되니까. 학교에 와서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카운슬러에요.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죠. 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 학교에서 이렇게 말해 줬어요. 아마 처음 3년 동안은 아주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는 responsibility를 알게 되고 점점 쉬워질거다. 

 

그런데 저는 안 그랬어요. 첫 해는 당연히 아주 힘들었는데, 또 첫 해에 지금의 와이프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 다음해에 결혼을 했거든요, 그 다음 해에는 또 아이가 태어났고..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서 "그래, 지금까지 힘든 건 좋다. 이제는 경험이 쌓였으니 좀 쉬워 지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카운슬러들이 정말 노력을 한다면 안 그래야 되는 거에요. 왜냐하면 need를 조금 조금씩 더 알게 되니까.. 여긴 조금 더 도와 줄 수 있다. 이런 학생들도 많이 있구나. 이런 problem도 있구나. 그리고 카운슬러들은 boundary가 없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다 도와주는 거니까. 더 바빠지는 거죠. 그래서 every year 8년 동안 더 바빠졌어요.

 

보통 고등학교 카운슬러라고 하면 진학상담 정도를 해주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요즘은 오히려 부모님들에게 resource가 많아 져서 그런 상담은 줄어든 거 같아요. 예전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책뿐이었으니까 그것만 가지고는 너무 어려워서, 우리를 전문가라고 생각하시고 찾아오셨어요.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우리가 모든 학생들을 다 깊이 알 수 는 없거든요. 너는 이런 성격이고, 이런 흥미가 있으니까 여기에 가면 좋겠다. 이렇게 우리와 상담을 해서 진로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학생과 부모님이 많은 대화를 통해서 함께 discover 해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전혀 안 하는 거죠. 

 

그래도 요즘은 조금 나아졌어요. 우리학교에도 그런 것을 도와주는 'Naviance'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온라인 프로그램인데 학생 한 명당 $3을 내요. account를 만들면 interest같은 걸 survey도 하면서, 너는 이런 personality니까 이런 career, professional을 가질 수 있다. 그걸 하려면 대학교 때 이런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 공부를 하고 싶으면, 이러이러한 대학교에 저러저러한 major가 있다. 그런 것까지 다 나와요.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기본적인 information에 대해서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에요. 그것을 위해서 학교에서 투자를 해서 프로그램을 샀어요. 그렇게 기본적인 research를 해본 다음에 우리에게 와서 feedback을 부탁하면 돼요. '어딜 갈까요?'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바뀌는 거죠. 조금씩 더 많은 학교들이 채택을 하고 있고요, 올해부터는 우리 School District의 중. 고등학교에 이 프로그램을 다 보급될 거에요.

 

진학상담 말고 다른 일반 상담들도 많이 하시지요?

그럼요. 카운슬링을 공부할 때, 우리가 석사과정을 공부 할 때는 그런 공부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social problem, 부모님이나 family problem, 그런 것을 공부하는 거죠.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카운슬러가 된 다음에 일을 하면서 배우는 거에요.

 

학교마다 카운슬러 오피스가 다 있나요?

고등학교에는 거의 다 있어요. Elementary에는 아마 1명?(교육구내) 중학교에도 카운슬러가 정말 필요한데 예산이 부족해요. 2008년쯤 예산 삭감을 할 때도, 카운슬러들이 먼저 Cut됐어요. 많은 학교들이 카운슬러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도 우리 학교에서는 대학교도 많이 보내야 하고, 부모님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은데, 다른 학교들은 안 그래요. 한국에서는 담임 선생님들이 그 역할을 하는데 미국의 Homeroom Teacher는 그런 개념이 아니니까 카운슬러가 그 역할을 해야만 하죠.

 

대학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어요?

처음엔 다른 한국 학생들처럼 의사가 되느냐, 변호사가 되느냐 하면서 이것저것 공부를 했구요, 사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흥미가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원을 많이 못 받았기 때문에, 대학교에 가서 한 번 시도를 해봤죠. 그냥 궁금해서..(웃음) 그런데 우와~ 애들이 너무 잘 하더라구요. '나는 너무 늦었구나'하고 느꼈죠. 

 

그래서 undecided 하다가 Social sciences에 International Studies라는 major를 선택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어려서 - 7살 때 - 미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어요. 또 다른 나라에서 생기는 일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게 궁금해서 그런 쪽으로 공부를 했죠. 그러다가 4학년 말쯤에 Education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교육분야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 UCI에서 5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마지막 해에 Education을 부전공으로 하게 됐고, 그러다가 카운슬링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죠. 

 

제가 Anaheim에 있는 케네디 하이스쿨을 다녔거든요. 

그 때는 카운슬러들이 많이 없었어요. 있어도 아주 연세가 많으셨고, 학생들과 최소한의 contact만 있었고, personal, social Counseling 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아주 힘든 몇몇 학생들에게만? 저처럼 공부도 괜찮게 하고, 배구부 captain도 하고, 그냥 대학에 무난하게 갈 수 있는 학생들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또 부모님들이 필요한 게 있어도 통역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죠. 카운슬러들이 전혀 도와 주지도 않았고, 그냥 이렇게 저렇게 공부만 좀 하다가 UCI에 가게 됐죠.

 

그래서 그 때 카운슬러가 돼야겠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음……제가 12학년 때 케네디에서 expelled 됐거든요.

12학년이 되면 대학교 결과가 나오잖아요. 저는 뭐 UCI된 거 그냥 괜찮다 생각했는데, 다른 친구는 Dream School에 못 들어갔고, 다른 애는 Cal State밖에 못 들어갔다고 엄마한테 너는 'Army'에 가야 한다. 그런 소리 듣고 집에서 엄마랑 싸우고… 음…… 뭐 아주 힘들었겠죠? 그날 친구들이 그렇게 너무 pressured 되가지고 그냥 stress를 release하고 싶어서, 한 친구가 '우리 학교 가지 말까!' 그러니까 그냥, '그래? O.K~' 뭐, 그렇게 된 거에요.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까 대학입시 같은 것은 우리가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너무 힘이 드니까,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하자. 그런 심리였던 것 같아요. 학교에 trespassing하거나 그러지도 않았는데, unlucky하게 경찰에게 잡혀서 유치장까지 가고 그랬거든요.

 

학교를 안 갔다고 유치장까지 가게 되나요?

그 때 친구들은 17살이어서 부모님들이 데리고 갔는데, 저는 18살이어서 weekend동안 있었어야 했어요. 월요일날 Attorney office에서 누가 와서 interview를 하면 집에 보내 주니까, Bail Money(보석금)를 waist하지 말라고 친절하게도 어떤 Police officer가 아버지에게 말해 주더군요. 그게 2만불 이었어요. (웃음) 

 

저는 그날 그 glass를 사이에 두고 telephone으로 아버지하고 이야기 했던 것도 기억이 나고, 나중에 학교에 다시 갔을 때 아주 중요한 volleyball game이 있었는데 교감선생님이 부르시더니 '너는 그런 game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했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그날 학교에서 저를 5일 동안 suspend했는데, 아무런 advice나 counseling도 전혀 없이 그냥 5일 동안 집에 있으라는 거에요. 그 다음에 편지가 왔는데 학교에 오지 말고 meeting에 와라. 그래서 이 meeting이 뭐지? 하니까 expulsion meeting인 거에요. meeting에 가보니까,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우리 차례에 들어갔더니 앞에 한 15명이 앉아 있는데, 모두 District의 Employee들이잖아요. 다 교장, 교감 선생님들 이었겠죠? 

 

그 때 아버지가 뭘 준비해 가신걸 봤어요. 한국 신문에 '어떤 학생이 무슨 징계를 받았는데, second chance가 있었다. 그 second chance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잘 하고 있다.' 뭐 이런 거였어요. 아버지께서 저한테 설명은 안 하셨는데, 그 사람들한테 꼭 그 얘기를 해주고 싶었던 거에요.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건, 한국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뭘 묻지 않으면 특히, 무슨 잘못을 했을 땐 먼저 얘기를 안 하잖아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eye contact도 안 하구요, 그래서 eye contact을 안하고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면 그냥 support만 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말을 꺼내시려고 하니까 그냥 cut-off하는 거에요. '미안한데, 시간 없다. 이것은 그냥 우리가 결정한 것을 이야기해 주려는 것이지. case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다. 다 결정이 끝났고, 다음 사람들도 해야 하니까 빨리 나가라'이러는 거죠. 

 

그런데 그 결정이라는 게, 그때 내가 12학년 거의 5월 달이 된 시점인데, 한 달만 더 있으면 졸업해서 대학교에 갈 수 있는 학생인데, 다니던 학교뿐만 아니라, 그 교육구에서 expelled라는 거에요. 다른데 가면 어찌어찌 할 수 있다, 이런 advice도 전혀 없이 그냥 나가라고 그런거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으셨겠네요.

네, 아주 힘들었어요. 그 후에 부모님께서 어떤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continuous school을 알아보셔서 거기서 GED를 받았죠. 

 

혹시, 약간 인종차별이라는 느낌을 받지는 않으셨나요?

그럴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racism보다도, 그냥 어떠한 care가 전혀 없었다. It doesn't matter였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때가 좀 특별한 시기였어요. 어떤 잘못을 하면 무조건 정학이다. 퇴학이다. 이런 policy가 처음 시작되었던 때라, 내가 그냥 운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그 때 누가 조금 더 care 했었으면, 누가 조금만 나에 대해서 advocate 했었으면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결과가 똑같더라도 저랑 제 부모님이 편안하게 이해를 하면서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는 거죠.. 

 

Nobody cares. 어떤 support도 없었어요. 이로 인해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도 전혀 상관없고, 무관용(zero tolerance) policy 였어요. 그 때가 학교에서 총기사고도 많이 나고, 그럴 때라 그런 정책이 생겼었거든요. 학생들이 칼이나 총을 학교에 가져왔다면 무조건 퇴학시킨다. 뭐 이런거… 

 

지금은 다 없어졌죠. 그렇게 못해요. Other mode of correction이라고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면 suspension이나 expulsion전에 어떻게 학생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가를 몇 단계에 걸쳐 먼저 시도를 해야 해요. 그 다음에 suspension이던, expulsion이죠. 왜냐하면 그 때부터 이런 문제가 너무 많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선 더 쉬운 거에요. 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과거의 그런 경력 때문에 대학생활이나 카운슬러가 되는데 어떤 영향은 없었나요?

힘들었죠. 그래도 오히려 Chance가 있었어요. UCI에 들어갈 때, 맨 처음에는 확인을 안 했거든요. 그런데 오리엔테이션 때 폴더를 픽업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나는 안 될 거다'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왜냐하면 저와 같이 expelled되었던 친구가 여름에 UCI로 부터 입학이 거절 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거에요. 그래서 여름에 매일 mailbox에 가서 체크를 했는데 안 오더라구요.(웃음) 그래서 아무튼 입학을 했는데, 궁금하잖아요. 왜 친구는 안되고 나는 된 걸까.. 그래서 2,3년쯤 있다가 Admission Office에 가서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그 때는 전부 checking을 하지 않고 spot checking을 했었대요. 전자시스템으로 하지 못하고 paper로 하니까 일일이 다 확인을 못한거죠. 그래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더라고요(웃음). 

 

지금은 electric으로 하니까 다 보겠죠. 그 친구가 공부를 아주 잘 하던 친구였는데 그 일 때문에 커뮤니티 칼리지에 한 8년 동안 있었어요. 동기부여가 안되니까, 이것저것 해보고, 여기 저기서 일도 하면서 조금씩 공부하다가……그렇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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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학에 가셔서 국제학을 선택하셨고요?

처음엔 undecided 였어요. 그때는 그렇게들 많이 했는데, 요즘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부모님들께서 의대에 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 쪽을 좀 보기도 했고, 제가 겪은 일 때문에 justice 이런 것에 관심이 있어서 politics로 가고 싶기도 했지만, 아까 말씀 드린대로 International studies를 하게 됐죠. 

 

당시엔 몰랐지만, 그 때 East Asia를 공부했던 것이 지금 한국 학부모님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 후에 캘스테이트 롱비치에 카운슬링 석사과정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프로그램의 Director을 만나러 갔어요. 제가 학생도 아니었는데 1시간 동안이나 상담을 해 줬어요. 

 

내가 왜 카운슬러를 하고 싶은지를 이야기 했더니 '너는 반드시 카운슬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냥 오지 말고 niche community, 다시 말해 special population이 왜 너를 필요로 하는지 그걸 알아봐라.' 그렇게 말해 줬어요. 그래서 apply를 하면서 CBEST(교사자격시험)를 pass하고 interview를 준비하는데, 그때 생각을 많이 한 거죠. 

 

내가 어떤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를 해야 하는지. 그런데 그건 너무나도 clear 하잖아요. 한국에서 어려서 이민을 왔고, 영어를 배워야 했고, 부모님들이 힘들게 사시는 것을 봤고, 내가 힘들었을 때 누구한테 물어 봐야 할지를 몰라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고… 

 

그런 모든 것들을 생각하니까 아, 나는 Korean Community나 Asian Community가 아주 큰 학교에 가야 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그 후엔 정말 운 좋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원래 이 학교에도 자리가 없었는데, 한 사람이 교감으로 가는 바람에 마침 자리가 나서 일하게 되었고요.

 

어려서는 꿈이 미술이셨다고 했죠?

그런 것도 잘 몰랐어요. 그냥 좀 잘한다고 생각했죠. 기억 나는 것이 미국에 와서 선생님한테 제일 먼저 칭찬을 받은 게 미술이었어요. 2학년 때 인걸로 기억하는데, 영어도 잘 못하고 친구도 별로 없어서 그냥 혼자 그림을 그리는데 친구들이 제 그림을 보고, 너 그림 잘 그린다. 내 그림을 그려 주면 25센트를 주겠다 그러더군요. 친구도 생기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는 거죠. (웃음) 또 선생님이 아트 컨테스트에 나가라고 해서 나갔는데 1등을 해서 백화점 어워드 쇼에 나가고, 상으로 50불짜리 체크를 받았어요. 부모님들이 일을 하시니까 할아버지랑 가서 받아 온 체크를 데스크 위 어디다 꽂아 놨는데, 이사할 때까지 6년 동안 그대로 있었어요. 

 

미술을 좋아했고 잘했는데 부모님께 아무런 관심도 지원도 받지 못했죠. 그러다가 나중에 알게 됐는데 아버지의 친구분 중 한 분이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 계셨대요, 그런데 너무나 어렵게 사시는걸 가까이서 보면서 아버지도 많이 힘들어 하셨대요. 아버지께서 그 얘기를 제게 일찍 해주셨다면 제가 이해를 했을 텐데, 그냥 아버지에 대해 서운하게만 생각했었던 거에요. 어머니께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데 우리 부모님께서 한 가지 모르셨던 것이 있었어요. 제가 졸업을 했을 때가 인터넷이라는 것이 막 커지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그때 야후나, 구글 같은 곳에 Art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성공을 한 거에요. 의사가 되는 것과 비교도 안 되는 성공을 할 수 있었죠. 그런 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거잖아요. 바로, 우리 한인 부모님들이 그것을 모르는 거에요. 어떤 사람이 예전에 무엇을 해서 성공했다더라. 그러니 너도 그걸 따라서 해야 한다. 네가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많은 학생들이 저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해요. 나는 이런 major를 하고 싶고, 이런 대학에 지원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못하게 한다.

 

카운슬러로서 학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군요.

그러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어떻게 parenting을 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처음엔 그것 때문에 아주 힘들었어요. 

 

4년 동안 전 과목 A를 받은 어떤 학생이 저한테 와서 하는 말이, 대학교에 가면 절대로 다시 집에 안 올 거라는 거에요. 그만큼 부모님과의 관계가 나빠진 거에요. 그래서 이런 건 confidential이지만 마지막 chance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그 학생의 부모님께 말을 했더니, 괜찮다는 거에요. '내 첫 번째 책임은 내 딸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관계가 아니다. 집에 온다면 오는 것이고, 안 오면 할 수 없다.' 

 

반대로 이런 학생들도 있어요. 네 goal이 너의 것이냐, 부모님의 goal이냐 하고 물어 보면, 나는 다른 것을 하고 싶지만, 부모님이 나를 위해 너무 희생하시고 고생하시기 때문에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이것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정반대의 상황이 있어요. 어쨌든 부모님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거죠.

 

가장 많은 상담이 진학 상담이겠군요. 그런 아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시나요?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는 학교는 너의 성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네가 배우는 것은 네가 더 성장하고 싶어서이고, 이것이 나중에 어떻게 너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관심을 두고 배운다면 나중에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이유라면 다 쓸모 없는 것이다. 

 

또, 너무나 안타까운 일은 많은 학생들이 11학년, 12학년 때가 되어서야 카운슬러를 찾아온다는 거에요. 

9학년 때부터 와도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데… 어떤 경우엔 도움을 주기에 너무 늦은 경우도 있거든요.

Counseling office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만 가는 곳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카운슬링을 하면서 어떤 점이 제일 힘드신가요?

음…………………… 

 

힘드신 점이 별로 없으신가 봐요? (웃음)

아니오, 다 못해서… 

학생들이나 부모님들한테 더 시간을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좋은 점은 7시부터 4시, 5시까지 일을 해도 하루에 2시간 밖에 일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너무나 빨리 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근데 저는 8년을 일했는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벌써 2시네, 이만큼이나 더 해야 되는데…' 그게 제일 힘든 거 같아요. 다 도와 줘야 하는데, 모두가 도움이 필요한데 다 못하는 거죠. 상담이 더 필요하고, 시간이 더 필요한 거죠. 바쁜 것도 좋은 것이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서…

 

제가 참 어리석은 질문을 했군요.

(웃음)아니, 전 이게 재밌어요, 너무 좋구요,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서 또 좋아하고.. 

 

카운슬러가 되려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요?

특별한 전공이 필요하진 않아요. 어떤 것이든 상관 없어요. 카운슬링과 조금 더 관련이 있는 전공이 도움은 되겠죠. 그러데 그것만 보는 것은 아니에요. Psychology가 아주 가깝겠지만, 거기서만 pick하는 것은 아니에요. 대학원이든 어디든 다양성을 요구하기 때문에…카운슬러가 되고 싶다면 대학교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돼요. 

 

그 공부가 카운슬링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이해를 하면서 공부를 한 다음에 CBEST(California Basic Educational Skills Test)를 pass한다면 거의 카운슬링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학교에 선생님이 100명이라면 2~3명 정도가 카운슬러에요. 그래서 부모님들은 risk가 크다고 생각 하시죠. 하지만 정말 내가 잘 할 수 있다면 - 특히, 한인 남자아이들 – 충분히 기회가 있어요. 

 

제가 CSU 롱비치에서 그 Director를 만났을 때 그 분이 저에게 "We need you."라고 했죠. (웃음) 그런데 학교 Administration에 한인 남자들이 거의 없어요. 부모님들이 못하게 하는 거죠. 딸들은 선생님도 많이 되는데, 아들은 절대로 안 시키는 거에요. 저는 운이 좋아서 쉽게 기회를 잡았는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런 기회들이 점점 많아 질 거라 생각해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너의 삶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지금이다.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에 간 다음에… 그런 말을 제일 많이 들어요. 그때부터 내가 뭘 할 수 있다... 그때부터 뭘 찾을 거다... 노력을 할 거다… 이해할 수도 있지만, 너무 낭비라는 거죠. 

 

너의 세상은 지금이고, 지금 네가 배우는 것을 가지고 나중에 네가 무언가가 되는데, 그게 urgency 라는 걸,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정말 깨달아야 한다는 거죠. 공부하는 것이나, 부모님하고 relationship을 하는 거나, 혼자서 생각하는 거나, 다 아주 빨리빨리 지금 시간이 없어지는 것처럼 노력을 해야 되는데, 고등학생들에게 부모님들이 주는 부담이나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을 생각을 하지 않고, 아직 이것은 내 삶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야만 나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게 얼마나 슬퍼요.

 

그런데 일찍 자신의 목표나 방향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잖아요?

찾는 게 goal이 아니고,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찾을 때까지... 평생 못 찾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고등학교 끝나기 전에 꼭 찾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에요. 

 

대부분 잘 모르고 있고,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애들도 대학교에 가면 또 바뀌잖아요. 그냥 journey잖아요. 탐험하면서, 재미있게 탐험하면서 어떤 것을 발견하면 그 때 부모님이 지원해주는 거죠. 우리애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해 하고 잘하는지 그걸 찾아서 서포트만 해주면 되는 거죠. 네가 재미있어 하고 잘 하니까 나도 너무 기뻐. 그러면 애들이 이것도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저것도 열심히 해보려고 하게 되죠. 

 

 같이 찾아보는 방법도 있어요. 억지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것 보다. 예를 들어, 약국에 같이 갔는데, '저 사람이 이러이러한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걸 봤니? 왜 저 사람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니?' 하면서 씨를 뿌려 주는 거죠. 그것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해 볼 수 있게, 경험을 얻을 수 있게, 크고 작은 경험들이 어떻게 아이한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같이 journey를 따라 가는 거죠. 그런데 그 journey가 12학년이 끝나면 시작하는 거다 또는 나중에 집을 나가서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 기회는 다 놓친다는 거죠.

 

흠, 이미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군요. 그러면 학부모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음…(미소)… College Admission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 그러니까 학생이 12학년 때 그...judgment 나오는 게, It's not the end. It's not the most important thing. 

 

그걸 이해하시면서 자녀들의 고등학교시절을 함께한다면 아주 쉽고 편안하게,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대입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final judgment 때문에 가족이 모두 hurting되고 있는 거에요. 여기서만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여기 - 한인들이 많은 - 학교에서 그런걸 많이 봐요. 

 

정말 큰 일 아닌데, 아주 작은 건데... 심한 경우에는 부모가 아이하고 그것(대학입시)에 대한 대화만 하는 거에요. 그럼 말도 하기 싫잖아요. '어어어… 엄마가 이쪽으로 오네..'이러고 도망가요. 그게 뭐에요…… 

 

답답할 때도 많으시겠어요.. 물론 이해하는 부모님도 있으시겠지만,

대 놓고 말하진 않지만, 표정을 보면 다 알죠. '무슨 소리야. 성적이 제일 중요하지.'(웃음)

 

그러면 나중에 그 학생하고 상담을 할 때 제가 부모님의 생각을 아니까 거기에 맞게 상담을 하죠.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아셔야 할 것이 카운슬러들은 교장 선생님 때문에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들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다 student focus, 학생들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학생들이 그걸 잘 알고 있어야 해요. No.1 support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학교에서는 카운슬러다. 그걸 알고 우리를 믿고 의지해라. 그거에요. 그런데 그게 많이 깨진 거 같아요. 그냥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는 거라든지, 중학교 때 만난 카운슬러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다든지 해서, 카운슬러는 다 그렇구나. 그래서 안 찾아오는 거죠. 

 

또 부모님들께서 알고 계셔야 할 것은 카운슬러마다 다 각자의 Role이 있어서 다 똑같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개인의 Opinion도, value랑 노력하는 정도도 다르고, 각자의 경험도, 왜 카운슬링을 하는지 이유도 다 다르니까.. 그런 것도 알고 계셔야 해요. 똑같이 비교할 수 없는 거죠.

 

학부모들이 한국인 카운슬러가 필요하니 채용해 달라고 학교에 요청을 할 수도 있나요?

무엇이든 할 수 있죠. 부모님들께서 알고 계셔야 하는 것이 부모님들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이나 학교 안에 있는 어떤 staff보다도 더 파워가, 권한이 있다는 거에요. 

 

끝으로 저희 가주교육신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을 부탁 드립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share할 수 있는 그런 신문이면 좋겠어요. 같이 신문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간의 relationship 이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대화도 잘 안하고 그러니까, 같이 좀 더 대화를 많이 하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런 opportunity를 가족들한테 준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하고 아이하고 함께 얘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신문이 만들어 주는 거죠. 그러면 그 가족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저희도 그런 세미나를 계획하고 있어요. 엄마랑 애들이랑 같이 와서 커피, 주스도 마시면서 아이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려고 해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행복하다는 James 선생님.

James 선생님은 과거의 아픈 기억이 어찌 보면 오히려 축복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James 선생님을 만난 모든 학생들이 받은 축복이고, 그 아이들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이 세상이 받은 축복인지도 모른다.

 

데니스 한 기자

vol.8-201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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