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 어바인 시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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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호 어바인 시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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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 16일에 열리는6회 어바인 한국문화축제준비에 여념이 없는 최석호 시장을 인터뷰 했다. 최석호 시장은 2004년 아시안계 미국인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되었고, 2012년 어바인 시의 시장에 당선된 뒤, 작년 11월 재선에 성공했다. 어바인 시청 시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Ø  시장님께서는 1968년 이민을 오셨고, 이민 오신지 정확히 30년만인 1998년에 어바인 통합교육구의 교육위원이 되셨습니다. 꽤 오래전(17) 일입니다만, 처음 교육위원에 도전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한국말로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표현이 있지요?(웃음) 처음엔 완전히 타의였어요, 결심을 하기까지 2년이 걸렸는데, 결국엔 내가 결정을 한 거니까 자의 반, 타의 반이 된 셈이지요.

사실 정치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어요. USC UCI등에서 강의를 하다가 1990년에 닥터 최 아카데미와 지금도 집사람이 운영하고 있는구몬영어, 수학 교실을 열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1993년에 미션비에호에서 어바인으로 이사를 했는데 학원이 꽤 번창을 해서 열심히 비즈니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육위원 권유하더군요.

 

당시 교육위원 한 사람이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공석이 발생했는데 나가면 무조건 당선이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교육위원을 하려면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절반은 투자를 해야한다는 거에요. 일주일에 40시간 일을 한다면, 20시간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단념을 했어요. 그렇게 2년이 지났는데, 또 내 학원에서 일을 하시던 선생님 한 분이 어바인 교육위원자리가 두 자리가 비었는데 아무도 출마를 하지 않고 있으니, 나가기만 하면 무투표 당선이 될 거라는 거에요. (웃음)

 

사실 그 선생님은 산타아나 교육구 교육위원에 출마를 했다가 낙선된 경험이 있던 분이었어요. 그래서 이쪽 일에 관심이 많으셨던 거지요. 고민 끝에 어플리케이션을 써서 냈는데, 알고 보니 저는 아무런 물정도 모르고 도전을 한 거였더군요. 보통은 어떤 사람이 나오는지 눈치를 보다가 마지막에 입후보를 하기 때문에 처음엔 출마자가 아무도 없었던 거였어요. 끝나고 보니까 총 10명이 어플라이를 했더군요. (웃음)

 

그 중에 한 분은 12년간 현직에 계신분이었기 때문에 큰 실책이 없는 한 무난히 당선이 되는 것이 관례였고, 한자리만이 공석이었어요. 한자리를 가지고 9명이 싸우게 된 것이죠. 9명 중 나만 마이너리티였고 또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후보자였는데, 참 이상하게도 제가 당선이 되었죠.(웃음) 주류 언론에서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첫 출마한 제가 당선이 된 것은 기적이라고들 말했어요.

 

Ø  그렇게 불리한 조건에서 어떻게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당선이 되신 건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캠페인 기간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정견 발표와 토론회를 했고 TV로 생중계가 되기도 했는데,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저만 다른 후보자들과 반대로 대답을 한 것이 있었어요. ‘스쿨 바우처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아시겠지만 학생수에 따라 주정부의 지원금을 Voucher형태로 부모에게 준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부모가 마음에 드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가 서로 경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인데, 하지만 그로 인해 공립학교가 위태로워질 수 있지 않겠어요? 경쟁력이 약한 공립학교가 하나, 둘 도태되고, 결국 공교육 시스템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인 거죠. 가주에서는 스쿨 바우처가 현실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일이지만 보수 쪽 사람들이 계속 이슈를 만들어요. 당신은 찬성이냐, 반대냐 하고공립학교의 교육위원이 되겠다는 후보자가 이 제도에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절대 현명한 발언이 아니지요. 그렇게 아홉 명의 후보자가 모두 반대한다고 말을 했는데, 나만 80%정도 찬성하는 취지의 대답을 했어요. “왜 다들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어바인의 학교들은 최고 수준의 학교들이다. 걱정할 이유가 전혀없다. 사립학교보다 더 훌륭한 학교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이미 어바인은 최고 수준의 학업 성과를 만들어내는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나는 여러분이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이게 다른 분들이 볼 때는 꽤 충격적이었을 거에요. 그 하나가 기억이 나요.

 

Ø  그렇게 1998년과 2002년 교육위원에 연이어 당선 되셨고, 2004년에는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4년 임기의 시의원이 되셨습니다. 어바인 통합 교육구 교육위원으로 재임 시, 어떤 일을 하셨나요?

 

.. 지금 생각나는 것은…,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 때는 교육 예산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아주 힘든 시기였어요. 그래서 학교 정비사업이 불가피했지요. 학생수가 줄어드는 학교를 폐쇄하고 통합하는 일로 반발이 심한 일이었죠. 몇몇 시민들이 주민 소환까지 시도를 했었으니까요. 물론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해 무산 되었지만... , 부족한 예산을 더 아끼기 위해 낭비되는 비용을 찾아서 개선하려고 모두가 노력하던 때였는데, 중국커뮤니티의 중국 학교가 한 고등학교 전체를 너무나 낮은 비용으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지요. 오히려 관리비용이 더 들어가서 손실을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렌트비를 현실화하기로 결정을 하자, 중국 커뮤니티에서 크게 반발을 했지요.

 

그 당시 제가 베델 한국학교의 교장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들의 입장을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교육위원으로서 시민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교육 예산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조금씩 임대료를 인상하는 나름대로의 절충안을 제안해 통과시켰어요. 물론, 그 분들은 같은 아시안으로서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제가 중간 입장을 취한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고, 그 때 저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이 생기셨다고 그래요.(웃음)

 

그런데, 그 분들에게는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그 일을 계기로 중국 커뮤니티가 모금운동을 해서 2년 만에 2백만 불을 넘게 모아 4만 스퀘어 피트가 넘는 지금의 중국문화센터를 건립하게 된 거에요.

 

정치를 오래 하다 보니까, 유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임무를 소신껏 실행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정치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표를 얻기 위해 일부 단체나 커뮤니티에게만 이로운 공약을 내놓기도 하고요. 대표적인 것이 Great Park에 재향군인(Veterans)들을 위한 Cemetery를 만들겠다는 계획 같은 것이었지요.

 

Ø  어바인 시가 교육의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어떤 이유라고 보십니까?

 

내가 보기에는 '전통'인 것 같습니다. 어바인 교육구의 첫 교육감이었던 Stanley Corey씨가 처음부터 교육의 질을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설정하고 기틀을 잘 짜신 것 같아요. 그런 문화가 개발되고 지속되다 보면 '전통'이라는 것이 생기잖아요? 한 번 그런 전통이 생기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니까, 1등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수준을 유지하거나 조금씩이라도 발전하게 되는 것이지요. 교육적 성과가 좋은 학군에는 우수한 학생들과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이 더 몰려들게 되니까, 그만큼 또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Ø  한인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매우 높다 보니, 한국 못지않은 사교육 열풍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분들도 많이 있는데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를 일류대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학력이나 학벌을 중시하는 그런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 부작용들이 싫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시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속에서 살다가 오신 분들이 미국에 이민을 오셨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그런 욕구나 문화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도 아이비리그 등의 일류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우수한 학교 성적과 여러 가지 합격 조건들을 갖추어야 하니까 사교육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Ø  공교육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요?

 

많은 교사나 교육관계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교사 한 사람이 각기 재능이 다른 20여명의 학생들을 모두 똑같이 이끌어 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개인의 능력 차이도 있고, 학습 동기의 차이도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또는 기간 안에 모두를 일정한 수준까지 도달하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물론, 사교육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와 질적 수준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회단체나 종교단체 등에서 그런 부분을 보완하려는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평등한 공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에 더 힘을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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Ø  두 분의 자녀가 있으시고, 아드님은 내과의사, 따님은 변호사이신 것으로 아는데 자녀교육은 어떻게 시키셨는지요? 

 

저는 아이들을 전혀 푸시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공부를 하는 습관이 들고 , 조금 앞서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겠죠. 또 부모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교육위원으로 활동을 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다 보니까, 최소한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을 것이다 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부모의 기대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더군요. 어차피 공부는 부모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저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뒤에서 지원을 해주면 되는 것이겠지요.

 

Ø  오는 5 16 '6회 어바인 한국문화축제'가 개최되는데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맨 처음 제가 시의원에 당선이 되니까, 미주 한인의 날로 지정된 1 13일을 어바인 시에서도 미주 한인의 날로 선포하고, 기념행사를 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몇몇 한인 단체들로부터 받았어요.

 

그래서 2, 3년간 한인 단체장과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상장도 주고, 그렇게 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하게 됐는데, 문득 내가 어바인 시의원으로 있으니까 그나마도 어바인 시에 신청을 하고, 동의를 얻어 이렇게 기념식을 하게 되었지만, 만일 내가 임기를 마치고 이 자리에 없어도 한인들을 초청해서 상을 주고 한인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기념사진 한번 찍고 신문에 한 번 나고 마는 이 행사가 커뮤니티 주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때만 해도 한인의 수가 지금보다는 훨씬 적었지만, 시의회에 한인 의원이 두 명이나 있고, 한국에서 조기 유학생들이 어바인으로 막 몰려오던 시기였는데, 본토의 주민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어요? Who are they? 갑자기 외부인이 다수 유입되면 누구나 거부감과 반발심이 먼저 드는 것이 당연한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그런 마찰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우리가 누군가를 알리는 기회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지역 주민들을 초대해서 우리의 음식도 나누고, 우리 고유의 문화도 체험하는 축제를 열어서 서로 정을 나누는 날로 만들면 좋겠다. 그래서 이 축제를 기획하게 된 것이지요. 2010년에 첫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래로, 6년간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현재는 OC KCC(오렌지카운티한인문화재단)주관으로 치르는 큰 규모의 어바인 시 행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OC KCC는 오렌지 카운티에 한인 커뮤니티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인데 초대 회장님께서 은퇴하시고 제가 2대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축제의 수익금을 한인회관 건립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는데요, 축제의 스폰서 유치를 제가 맡고 있고, 지역의 많은 기업과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덕분에 올해도 15만불 목표를 이미 초과해 20만 불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Ø  시장님의 임기가 내년까지 입니다. 그 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제가 장기 집권을 하려고 법을 바꿨어요(웃음). 농담인데요, 원래 시장은 두 번 까지만 할 수 있다고 되어있지요. 하지만 시장 임기 두 번을 마치고, 시의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다시 시장에 출마를 할 수가 있어요. 당선이 되면 또 두 차례의 임기 동안 시장을 할 수 있는 거에요. 시장직과 시의원직을 왔다갔다하면서 일생 동안 계속 시장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시의원을 두 번 하고, 시장을 두 번 하면 더 이상은 시장을 못하도록 법을 바꿨어요. 작년에 법이 통과 되었기 때문에 지난 임기는 소급적용이 되지 않고, 올해부터 적용이 되어서 지금이 제 첫 시장 임기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당선된다면 한 번 더 시장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저를 공격하는 분들은 최석호가 장기집권을 하려고 법을 바꿨다고 그러는데(웃음) 어쨌든 그 법이 통과가 됐어요. 그렇게 시장직에 한 번 더 도전하는 선택이 있고, 또 하나는 마침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지구의 하원의원 한 분이 임기가 끝나서 공석이 돼요. 그래서 내가 현직 시장으로서 출마를 할 수도 있는데, 출마를 한다면 늦어도 올 9월이나 10월에는 결정을 해야 하지요.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현직 어바인 시장이 가주 하원에 출마를 하는 것이니까 어바인 분들만 투표를 하신다면야 좋겠지만(웃음), 레이크포레스트부터 빌라팍까지 5~6개 동네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구이기 때문에, 신문을 자주 보시는 분들이라면 알 수 도 있겠지만 다른 지역 분들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알겠느냐 그게 관건이죠.

 

어바인 시를 위해 몇 년간 더 일을 할 것인지, 하원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더 큰 일에 도전할 것인지 더 고민해볼 일입니다. 물론 지금은 어바인 시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그레이트 팍 개발계획, 메트로 폴리탄 도서관 건립, 실리콘 밸리와 같은 어바인 퓨쳐 테크밸리 조성 등의 공약 사업도 계획대로 착실히 진행 중에 있으니까요.

 

Ø  이민 1세대 한인으로서 교육위원과 어바인 시장을 역임하신 것만으로도 미주 한인의 권익 신장을 위해 큰 역할을 하셨고, 1.5세나 2세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셨다고 생각합니다. 주류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하신 이민 1세대 정치인으로서 1.5세나 2세 한인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잘난 척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만일 나를 롤 모델로 생각한다면,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세요. 나는 이민 1세대에요. 언어나 생각, 사고방식과 문화가 1960년대의 한국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장애가 있는 것과 다름 없잖아요. 이런 사람이, 언어도, 문화도, 미국 정치도 생소한 이민 1세대 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오렌지 카운티에서 세 번째로 크고, 이렇게 안전하고 훌륭한 도시의 시장이 되었잖아요. 여기서 태어나서 언어가 자유롭고, 미국 문화에 익숙하고, 학교 친구 등의 인맥까지 가진 여러분들이 나보다 더 낫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말이에요. 여러분의 꿈을 현실로 바꾸는 데에 나보다 더 장애물이 있겠어요?

Dream big, work hard and achieve it. 이렇게 말해 주고 싶네요.

 

Ø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님들께도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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