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로 다시 세계 무대에 등장한 이형택-클래스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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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로 다시 세계 무대에 등장한 이형택-클래스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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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테니스는 ‘이형택’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8년 2월 국가대항전 테니스대회인 데이비스컵 본선이 독일에서 열렸다. 당시 세계랭킹 44위였던 이형택 선수는 대회 첫날 독일과의 경기 중 두 번째 단식에서 세계 랭킹 68위 플로리안 마이어와 만나 풀세트 접전 끝에 3대 2로 승리했다. 1959년 데이비스컵에 처음 출전한 이후 48년동안 승리가 없었던 한국은 이형택 선수로 인해 마침내 본선 첫 승리를 이루어냈다. 

 

2003년 1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남자단식에서 한국 테니스 선수로는 최초로 우승한 이래 그는 한국 테니스의 전설이 되었다. 2000년과 2007년에는 US오픈 16강까지 올랐고, 2007년 8월 ATP 랭킹 ‘세계 36위’에 이름을 올렸다. 은퇴 무렵에도 한국 테니스 최고 세계 순위 기록은 여전히 그의 것이었다.  

 

지난 달 2018 호주 오픈에서 4강에 진출해 돌풍의 주역이 된 정현 선수가 세계 랭킹 29위에 오른 요즘에도 테니스 이야기는 이형택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되곤 한다. 그 ‘이형택’이 캘리포니아, 그것도 아주 가까운 동네의 테니스코트에 나타났다.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2년 만에 뵙습니다.(2년 전 미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본지와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2009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 ‘이형택 테니스 아카데미 재단’을 설립해 후배 양성에 힘써왔습니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일 년 전쯤 맨땅에 헤딩한다는 각오로 이쪽으로 아주 왔죠. 미국내 각종 대회뿐만 아니라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프로로 진출하는 시스템 등 미국 테니스계를 공부하는 중입니다.

 

▶ 기사에서 호칭을 어떻게 쓰는게 좋으신가요? 유명한 선수셨으니 습관적으로 선수라고 부르게 되지만 재단 이사장님이시기도 하고, 또 아카데미 원장님이기도 하시고..

- 음.. 감독이요.(웃음) 저는 감독이 제일 좋죠.

 

▶ 자녀들이 셋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테니스를 가르치시나요?

- 지금 11살, 10살, 6살인데 셋 다 테니스를 치고 있어요. 첫째와 막내가 많이 치는 편이죠. 우선은 취미로 시작하는 건데 특히 첫째 딸이 어렸을 때는 테니스에 재미를 못 느끼다가 어느 순간 더 많이 치고 싶어하더라구요. 요즘은 대회도 몇 번 나갔는데 두 번 우승을 했어요. 그래서 레벨을 올려서 다른 대회에도 출전을 했는데 처음 나간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하더군요. 그런데 사실 이 점이 한국과 많이 달라요. 

 

우리 아이 정도 실력으로 한국에서 대회에 나가면 1회전도 이길까 말까 하죠. 대회가 많지 않고, 실력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 다 같은 대회에 출전하니까, 늘 이기는 사람만 이깁니다. 

테니스를 막 시작했거나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대회에 출전해서 월등한 실력의 아이들과 게임에서 계속 지게 되면 테니스장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죠. 그렇게 하고 나오면 ‘나 테니스 안 할래’ 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고요.

 

그런데 여기는 실력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여서 대회를 합니다. 시합에 지더라도 조금만 더 하면 나도 이길 것 같다는 동기가 부여될 수 있죠. 실력 수준과 상관없이 우승이라는 것에서 얻는 자신감은 똑같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곳은 동기부여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은 우승을 해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그런 아이들이 여기 오면 승리를 맛보고 우승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시합을 하는 도중에 실력이 느는게 눈으로 보일 정도인데, 한국에서 중간 정도 하는 아이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대회에 도전해보면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자신감을 한번 얻으면 아이들은 실력이 확 늘어요.

 

▶ 예전에 막내가 가장 재능이 있어 보인다고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 네, 막내는 집에서도 계속 공을 치는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입니다. 테니스 안된다고 하면 울고 그러는데, 아직 어려서 많이 시키지는 않고 본인이 좋아하니까 지켜보는 중입니다. 그런데 사실 꼭 선수가 되는 것보다는 테니스가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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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정현 선수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정현 선수와의 인연은 오래되셨죠?

- 정현 선수와는 20살 차이가 나서 선수생활을 같이 한 시간은 없었어요. 현이가 삼성팀에 들어올 때도 제가 은퇴할 즈음이라. 대신 현이가 국가대표 주니어 팀에 있을 때 제가 감독으로 국가대항전에 함께 출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기억으로 정현 선수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선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하는게 쉽지 않은데, 제게 먼저 와서 내일은 몇 시에 시합인데 몇 시에 뭐 할까요? 하고 적극적으로 묻고 준비를 합니다. 다른 선수들은 코치가 시킬 때까지 가만히 있는게 참 아쉬웠는데 현이는 달랐어요. 정현은 코치들이 잔소리를 하지 않는 선수였습니다. 본인이 깨닫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애들이 진짜 무서운 애들이죠.

 

▶ 이번 호주 오픈 에서 정현 선수 플레이에 대한 전체적인 평은 어떻게 하십니까?

- 체력과 멘탈이 탑 선수들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않았어요. 오히려 세계 랭킹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 선수와의 게임에서 파이널 세트까지 가서도 6-2로 일방적인 게임을 했다는 건 모든 면에서 압도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스트로크 머신’이라 불리며 완벽한 스트로크를 자랑하는 노박 조코비치 선수를 상대로도 전혀 흔들리지않았고 압도하기도 하니, 외려 조코비치 선수가 힘이 들어가서 실수를 하기도 했죠.

 

경기하다 보면 게임의 승패가 갈리는 중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때 탑 선수들의 기세와 큰 대회 관중들의 호응같은 코트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무너질 수도 있는데 현이는 그런 것에 기죽지 않았고, 나중엔 본인이 관중 분위기를 유도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대담하고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선수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과거 서브나 포핸드에서 단점이 있었지만 보완을 잘해서 지금은 단점을 딱 꼬집기가 쉽지 않아요. 백핸드는 이미 탑 파이브에 꼽을 수 있는 뛰어난 실력이고, 서브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 그래서 지금도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경험을 더 쌓으면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번의 좋은 성적이 부담도 될 수 있는데 그걸 이겨내야 훌륭한 선수가 됩니다. 부담감이 없을 수가 없죠. 그런데 그걸 즐길 줄 알아야 해요. 제가 아는 현이 성격으로는 잘 이겨낼 것 같습니다.

 

▶ 정현 선수가 감독님보다 더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 빠르기는 내가 더 빠른 것 같은데 멘탈은 현이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웃음)

 

▶ 그건 정현 선수가 국제 경험이 많은 탓일까요?

- 그렇죠. 그랜드 슬램 경기장들도 주니어 때 다 다녀봤고 또 즈베레프처럼 함께 성장한 선수들과 이제 본격적으로 겨루는 것이니 게임에 큰 두려움은 없는 거죠.

사실 저는 늦게 시작한 거예요. US오픈 16강에 오를 때가 24살. 그때부터 시작한 거죠. 주니어 경험도 없이 랭킹에 올랐으니 특별한 케이스이긴 했습니다. ITF(국제테니스연맹, the 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 관계자들도 과거 데이터가 전혀 없는 선수가 갑자기 나타나 16강도 가고 36위도 하니까 놀랐던 것이고요.

 

▶ 제가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는데 ATP는 무슨 뜻인가요?

- ATP는 Association of Tennis Professionals의 약자에요. 남자 프로테니스 투어. 여자프로테니스는 WTA 투어죠. ATP의 경우 챌린저는 좀 약한(실력이 낮은) 대회에요. 투어 선수들이 성적이 안좋으면 내려가기도 하는.  주니어들은 ITF 대회를 뛰게 돼요. 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 올림픽, 그랜드슬램, 주니어 대회는 ITF에 속합니다. 가장 낮은 레벨이 퓨처스 대회죠.

 

(편집기자 주- 4대 메이저대회는 국제테니스연맹(ITF)이 호주, 프랑스, 영국, 미국테니스협회와 함께 주관한다. ATP, WTA투어와는 성격이 다른 대회임을 강조하기 위해 큰 대회라는 뜻의 ‘그랜드슬램’으로 불렸다. 1930년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존 키어런이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그랜드슬램으로 표현하면서 하나의 스포츠 용어로 정착됐다.)

 

▶ 만약이긴 하지만 감독님이 정현 선수와 같은 환경이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까요?

- 영향이 없을 수는 없죠. 주니어 때 외국 아카데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당시엔 외국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해서 아쉬움이 있긴 하죠. 그런데 그보다는 만약 저와 정현 선수의 활동 시기가 조금이라도 겹쳤다면 함께 대회에도 출전하고 복식 경기에도 나섰을 텐데 그런 점이 좀 더 아쉽습니다.

 

▶ 정현 선수에 대한 마지막 질문으로, 페더러 선수와의 4강전 기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잘한 결정이에요. 어쩔 수 없죠. 스포츠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4강에 가기 이전에 정현 선수는 이미 포기해야 하는 상황의 한계를 넘어선 거예요. 진통제까지 맞아가면서 경기를 계속 했는데요. 아픈걸 참아가면서 억지로 경기를 하는 것은 상대 선수에게도 또 팬들에게도 예의가 아니죠. 저도 아픈 선수와 게임을 해봤는데 하면서도 기분이 좋지않아요. 아쉽지만 그래도 잘 결정한 것이라 보고요, 그래도 첫 세트 경기를 한 것은 페더러라는 대선수와 함께 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분들을 위한 배려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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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 아카데미를 여신 지 얼마나 됐죠?

- 지난 봄 즈음에 시작했으니까. 한 7~8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HT는 ‘형택’의 약자이고 대상은 아주 초보자는 아니고 공을 좀 칠 줄 아는, 어느 정도 랠리가 가능한 수준이라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주로 학생들이고 성인반은 아직 따로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요, 지인과 주변 분들 중에 소문으로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아직은 코칭 스태프를 꾸려서 운영하고 있는 단계가 아니라서 현재 20명 내외의 학생들은 제가 직접 가르치고 있습니다.

레슨 프로그램은 개인의 사정에 따라서 제각각 인데 보통 평일에는 오후 2시 30분부터 7시까지 합니다. 현재 학기 중에는 3~4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있고요, 방학 때 진행하는 캠프는 11시부터 풀타임으로 진행됩니다.  

주로 이곳에 사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겨울방학이라 한국에서 온 학생이 있는데 유학생들이 많이 오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에선 제도도 달라지고 해서 대학 가기가 더 힘들어 졌어요. 그 정도 테니스 실력에 영어 공부를 조금만 하면, 이곳에서 대학에 진학해서 심리학이든 과학이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운동도 할 수 있거든요. 이런 학생들이 바로 인재죠. 테니스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제가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 대학 진학을 목표로 미국에 온다면 시기가 중요하겠네요.

- 그렇죠. 최소한 3년은 공부를 해야 가능할겁니다. 제 아카데미에 대만과 홍콩에서 온 학생들이 있는데 UCLA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는 친구는 SAT가 1360점 정도 나오고, 코넬 대학에 가는 아이도 있는데 1420점, MIT 가는 친구는 하나 틀려서 1560점 맞았어요.

 

▶ 아카데미에 오는 학생들의 국적이 다양하네요.

- 네. 저는 좀 더 많은 국가의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싶어요. 미국 아이들은 다양한 국내 대회에 참가해서 대학 감독들의 눈에 띄게 되는데 외국 선수들은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ITF 랭킹이 높다거나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더 힘들죠. 그래서 그런 선수들을 위한 쇼케이스가 있는데 외국 선수들이 거기에서 게임을 하면서 대학 감독들에게 기량을 선보이게 됩니다. 여름방학에 하버드와 예일에서 (쇼케이스가) 있구요, 가까운 클레어몬트에서는 1월달에 있습니다. 외국 선수들은 이런 기회를 통해 감독들에게 발탁이 됩니다. 감독들은 마음에 드는 선수가 있으면 불러서 학교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묻습니다. 미국에선 성적, GPA가 중요합니다.

 

▶ 프로 테니스 선수가 되기 위해서 학업보다 훈련에 좀 더 비중을 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을까요?

- 엘리트 오픈 스쿨(EOS)과 협력해서 마련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미국 아이들은 홈스쿨링을 하면 해결이 되는데 유학생들에게는 불가능하죠. 그런데 엘리트 오픈 스쿨의 경우는 I-20나 비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시합에 나가느라고 생긴 수업 결손을 채워줄 수 있거든요. 온라인 수업이지만 관리 감독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요. 그래서 저희가 엘리트 오픈 스쿨과 업무협약(MOU)을 맺었습니다. 엘리트가 원래 대학 입시에 필요한 도움, SAT 시험 준비에 대한 노하우 같은 것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테니스가 중요하지만 공부도 소홀히 할 수는 없으니까요.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죠.

- 우선 봄방학에 일주일 정도 캠프가 있고요, 이후에 여름방학 캠프도 있을 예정인데 자세한 건 지난 해 저희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참고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HT 테니스 아카데미에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한국 테니스의 레전드 이형택 감독은 다시 코트에 섰다. 이제는 스스로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 후배들의 도전을 돕기 위해 라켓을 단단히 쥐었다. 세계를 향한 또 다른 이형택의 역사가 이제 막 시작되는 참이었다.

 

*지면에 다 싣지 못한 이형택 선수의 이야기는 본보 팟캐스트 <CA92833>을 통해 더 들으실 수 있습니다. CA92833은 아이폰의 팟캐스트 또는 팟빵(http://www.podbbang.com/ch/12396 )에서 제공됩니다.

 

**HT 테니스 아카데미 연락처: (213) 999-0556 / hyungtaik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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