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오 섹슈얼 (Sapiosexual)’ -외모는 퇴색해도 지식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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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오 섹슈얼 (Sapiosexual)’ -외모는 퇴색해도 지식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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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일 밤 한국의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사피오 섹슈얼’이라는 낯선 단어가 나타났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의 첫 방송 이후였다. Sapiosexual을  구글 검색창에 쓰면 이렇게 나온다.


sa·pi·o·sex·u·al /ˌsāpēōˈsekSH(o͞o)əl/

adjective 

1. (of a person) finding intelligence sexually attractive or arousing.

noun

1.   a person who finds intelligence sexually attractive or arousing.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신체부위 중 뇌를 성적 매력으로 여기는 사피오섹슈얼리티(sapiosexuality)가 새로운 취향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피오(sapio)는 ‘이해하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현생 인류를 의미하는 ‘호모 사피언스’의 ‘사피언스(sapiens)’가 사피오에서 파생된 단어다. 

 

신문에 따르면 이 신조어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0년 이후, 온라인데이팅 앱인  ‘오케이큐피드(OKCupid)’에 등장하면서다. 사용자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표시하는 카테고리 안에 이 신조어가 포함된 것이다. ‘오케이큐피드’ 관계자는 “사용자들이 지적인 면에 흔들린다는 사실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오케이큐피드’ 사용자의 0.5%가 자신을 ‘사피오섹슈얼’이라고 정의했으며 이들의 연령은 대체로 31~40세였으며,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고 한다.

지난 3월 개최된 뉴욕의 영화제 ‘시네킹크’에는 ‘사피오섹슈얼’이라는 제목의 단편영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여주인공 Casss는 영화 속에서 이런 대사를 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단단한 복근과 완벽한 광대를 보고 반하겠지만, 나는 아니야”

 

인디애나대학의 데비 허브닉 교수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파트너와 지적 교류를 한다”며 “그러나 사피오섹슈얼은 지적 요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사피오섹슈얼’은 성적 지향 보다는 정체성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신을 사피오섹슈얼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은 동시에 이성애자·동성애자·양성애자·무성애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사피오섹슈얼의 등장은 새로운 엘리트주의나 허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피오 섹슈얼은 2015년 올해의 신조어에 포함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사피오 섹슈얼과 유사한 의미로 ‘뇌섹남’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는데 ‘뇌가 섹시한 남자’를 뜻하는 이 신조어는 지난 2014년 5월, 여성지 [우먼센스]에서 기획기사를 낸 것을 기점으로 각종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국의 통계청이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엔 ‘뇌섹남의 조건’ 그래픽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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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한민국 통계청 트위터 

 

 

이런 분위기때문인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아쉬운 점은 인문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관심보다는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을 채워줄 도구로서 “인문학 상식”이 필요했다. 섹시한 두뇌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기 위한 지적인 대화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2014년 이런 요구를 너무나 솔직하게 제목에 담은 책,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이라는 책이 선풍을 일으켰다. 출간 2년여가 지난 6월 현재 1, 2권이 100만 부를 넘기면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이 올해 1학기에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본 책이 지대넓얕으로 집계됐으며 연세대 도서관 대출에서도 9위를 기록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고유성, 깊이 같은 책의 전통적 의미에 ‘지대넓얕’이 부합하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교양을 빨리, 용이하게 습득하고 싶어 하는 요즘 독자층의 트렌드는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얕고 넓은 지식은 현실적으론 별 도움이 안된다. 그렇게 얻은 지식으로는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취업이나 입학시험 같은 실생활에 보탬이 될 확률도 낮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새삼스럽게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에 환호할까? 

아는게 힘이라고 지식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삶이 더 풍성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머리가 아플만큼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몰랐던 세상을 알게 하고 어쩌면 인문학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전에 없던 통찰력을 얻거나,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그리고 적당히 잡다한 얘기들이 재미가 있다.  이러한 경향은 방송으로도 전이되어 ‘지대넓얕’ 형식의 프로그램이 되었다.

 

인문학의 예능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바보상자라면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죽인다는 죄책감을 좀 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EBS 강좌를 보는 것은 지나친 느낌이다. 대신 노골적으로 섹시한 뇌를 내세우며 호객 행위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적당히 재미있으며 또 적당히 유익하다. 대표적인 프로그램 몇가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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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섹시대 문제적 남자>

 2015년 2월부터 tvN에서 일요일 밤에 방송중인 프로그램이다. 남자출연진들이 다양한 IQ 테스트 문제와 퍼즐을 해결하는 형식이다. 웹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지금은 뇌섹시대!

조각 같은 얼굴의 꽃미남만이 사랑받던 시대는 끝났다. 외모보다 두뇌, 스펙보다는 실력이 중시되는 지금은 뇌섹시대! 갈수록 치열해지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러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문제!

국내 대기업은 물론, 세계 대기업 입사문제부터 대한민국 상위 1% 두뇌들이 출제한 [문제적 남자]만의 골드 문제까지! 지금까지 본적 없는, 하지만 당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만난다!”

 

꽤나 거창하지만 학벌 반듯하고 외모 출중한 남자 연예인들이 IQ 테스트 문제와 유사한 형식의 문제들을 푸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편집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출연진과 함께 문제를 풀 수는 없지만 설령 답을 모르더라도 그들이 풀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지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회차마다 나오는 게스트들의 생활기록부를 공개한다거나 높은 지능, 유학 경험 등을 강조해서 학벌이나 스펙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과 함께 고정 출연진이 모두 남자로 구성되어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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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JTBC에서 매주 수요일 밤에 방송되고 있다. 제작진이 제시한 기획의도는 다음과 같다.

 

【 질문은 모든 새로운 것의 시작 】

기본적인 질문조차 허하지 않는 불통의 시대, 궁금한 것에 대해 묻지 못했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우리의 삶이 무너져가는 것도 몰랐다. 이제 우리의 교양을 위한 질문이 아닌 생존을 위한 질문을 던진다. 질문이 사라진 시대, 답답한 침묵을 깨뜨릴 ‘차이나는 클라스’가 왔다!

 

참고로 차이나, 중국(China)과는 아무 관계없는 프로그램이다. 초청강사의 강의를 기본으로 연예인 출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는데 출연자 구성을 다양하게 하여 시청자와의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했다. 첫 시간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 강의를 시작으로 김형철 교수 “정의가 뭐지?”, 장하성 교수의 “불평등 어쩔건데?”등으로 이어지며 최근 문정인 교수의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생존 전략은?” 이라는 주제가 방송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매력은 뻔한 내용이라 아무도 묻지 않거나 나만 모르고 있는것 같아 질문하지 않는 내용들에서 출발해서 뜨거운 토론으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기도 한다. 유명 강사의 일방적인 강의와는 차별화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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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tvN에서 지난 달에 방송을 시작한 ‘알쓸신잡’은 출연자들도 자신들의 프로그램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할만큼 길고 낯선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이 프로그램이야 말로 가장 완성도 있는 인문학의 예능화를 이루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고 있는 나영석PD의 프로그램은 대부분 여행가서 밥 먹고, 섬에 가서 밥 해먹고, 게임해서 밥 먹거나 해외에 나가서 밥을 해서 파는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들이었다. 알쓸신잡 역시 ‘나영석 브랜드’의 요소가 담겼다. 작가 유시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물리학자 정재승 그리고 뮤지션 겸 방송인 유희열이 여행을 다니며 맛집을 찾고 즐기면서 각자의 인문학, 과학, 음악적 지식을 수다로 풀어낸다. 익숙한 듯 새로운 이 프로그램 역시나 성공해서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 기준 6.6%, 최고 8.5%까지 기록해 매회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기사를 시작하며 소개한 사피오섹슈얼이라는 단어도 첫 회 정재승 박사의 입을 통해 나와 화제가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이 알려졌을 때 또 아저씨들의 이야기냐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수준 높은 내용에 매료되어 비판의 날은 무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문화재를 설명하는 안내판의 표현과 띄어쓰기를 지적하는 유시민 작가가 신사임당이 이율곡의 어머니로만 기억되는 것에 화를 내고, 박경리문학관을 구경하던 김영하작가가 ‘여류작가는 멸칭이다.’라고 지적하는 등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이 세간의 우려를 완화시켰다. 장어가 정력에 좋은가에 대한 정재승 박사의 과학적 의견에는 절로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 아재들은 박학다식하며 웃긴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이어지는 지식 대방출 수다가 보통 18시간씩 이어진다는데 이것을 한 시간 남짓으로 편집해서 방송으로 내보내자 열혈 시청자들은 급기야 무편집본을 요구할 만큼 알쓸신잡은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한껏 자극한다.

 

‘알아서 남 주나?’라는 옛말이 있다. 현대에선 내가 아는 바를 남에게 줄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유익하고 섹시하게.

 

Vol.125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8-10-12 09:38:57 에듀인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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