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in’ On Nobel’s Door - 노벨상에 얽힌 이야기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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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ckin’ On Nobel’s Door - 노벨상에 얽힌 이야기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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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이 되면 의학과 경제학, 문학 등 6개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올해는 103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지난 주 목요일(13)까지 각 분야에서 가장 큰 업적을 일궈낸 노벨상 수상자들이 속속 발표됐다. 올해 노벨상의 가장 큰 이슈는 문학상을 받은 가수밥 딜런이다.

각 부문 수상자들과 함께 노벨상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노벨상의 역사

노벨상은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상이다. 노벨이 죽기 1년 전인 1895 11 27일 파리에서 작성한 유언(“prizes to those who, during the preceding year, shall have conferred the greatest benefit to mankind.”)에 따라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다섯 개 분야에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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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내용>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나머지 모든 유산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 유언 집행자는 그것을 안전한 유가 증권으로 바꿔 투자하여 기금을 조성하고, 그 이자로 매년 그 전해에 인류를 위해 최대의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금 형식으로 분배한다. 그 이자는 똑같이 5등분하여 다음과 같이 할당한다.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이나 개선을 이룬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 간의 우호 증진 또는 상비군의 폐지나 감축을 위해, 또는 평화회의의 개최나 추진을 위해 최대 또는 최선의 일을 한 사람.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톡홀름의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서, 생리학 및 의학상은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에서, 문학상은 스톡홀름 아카데미에서, 그리고 평화상은 오슬로의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출된 5인의 위원회가 각각 수여하도록 한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데 후보자의 국적이 고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스칸디나비아 사람이건 아니건 가장 적합한 인물이 수상하여야 한다. 나는 이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알프레드 노벨의 사후에 공개된 유언장에 따라 1896년에 설립된 노벨재단(The Nobel Foundation)은 노벨의 유언 실행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친척, 친지 등에게 지급되고 남은 스웨덴 화폐로 총 3,300만 크로나의 노벨의 유산은 세금을 내고 3,100 크로나(현재 가치 약 26500만달러)가 남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알프레드 노벨은 순자산의 90.3%를 베푼 것으로 추계된다. 이 돈으로 노벨의 사망 5주기인 1901 12 10일부터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이후 매년 10월 초에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그해의 수상자를 발표하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평화상 시상을 제외한 모든 시상식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오늘날에는 노벨상이 세계 최고의 영예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지만, 노벨의 유언장이 공개된 직후 스웨덴 내부에서는 이 상의 제정을 놓고 격렬한 비난이 일었다. 노벨의 일가 친척은 자신들의 정당한 유산이 엉뚱한 상에 빼앗기게 되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법적 대응을 고려했다. 또 수상자 선정에서 국적에 구애되지 말라는 유언 때문에 스웨덴 국민 사이에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된다는 비난도 일었다. 평화상 수상자를 스웨덴이 아니라 노르웨이 국회에서 선정하게 한 것을 놓고도 논란이 일었다. (당시에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연합 국가였기 때문에 스웨덴 국왕이 노르웨이 국왕을 겸했는데, 두 나라는 1905년에 별개의 국가로 분리되었다).

 

노벨경제학상(Nobel Memorial Prize in Economic Sciences) '풀 네임'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한 스웨덴 중앙은행의 경제학상(the Swedish National Bank's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 다른 노벨상들과 달리 경제학상이 이처럼 긴 이름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다.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 제정된 노벨상은 5개로 경제학상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노벨상이 탄생한 지 67년이 지난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인 리크스방크는 창설 300주년을 맞아 경제학상을 만들었다. 당시 노벨 가문은 이것이 노벨의 유언과 다르다며 강력하게 반대했고 이렇게 해서 '노벨을 기념하여 스웨덴 중앙은행이 준다(Sveriges Riksbank till Alfred Nobels Minne 1968; The Sveriges Riksbank, in memory of Alfred Nobel, 1968)'는 긴 이름이 붙게 됐다. 노벨경제학상 메달이 새겨진 노벨의 흉상 역시 다른 노벨상과는 모양이 다르며 리크스방크 명칭이 새겨져 있다. 노벨경제학상의 상금을 주는 곳도 노벨 재단이 아닌 스웨덴 중앙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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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알프레드 노벨은 1833 10 21일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한테서 공학을 배웠고, 1842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뢰 공장을 차려 성공한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갔다. 17세에 모국어인 스웨덴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그는 17세가 되던 1850년에 파리에서 1년 동안 화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스웨덴 출신의 발명가인 존 에릭손 밑에서 4년 동안 일하며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1860년경에 스웨덴으로 돌아온 알프레드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 해 니트로글리세린 제조법으로 특허를 받아 사업가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 1864 9월에 스톡홀름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동생을 비롯하여 다섯 명이 사망했는데도 그는 한 달 후에 첫 합자회사를 차렸다. 스웨덴 정부는 공장 재건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배 위에서 니트로글리세린 취급에 따른 위험을 극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실험했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산질 충전 물질인 규조토로 스며들게 한 뒤 건조시켜 안전한 고형 폭약 다이너마이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1867년과 1868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다이너마이트 관련 특허를 따냈고, 1876년에는 폭발성 젤라틴을 개발하여 특허를 받았다. 그는 40세의 나이에 큰 부자가 되었다. 이후 스웨덴, 독일, 영국 등에서 계속 공장을 세웠고, 1886년에는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회사노벨다이너마이트트러스트사를 세웠다. 그동안 그의 형인 로베르트와 루드비히는 카스피해 서안에 있는 바쿠 유전지대 개발에 성공하여 노벨 가문은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이들은 세계 최초 유조선조로아스터호를 사용해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파이프라인을 설치하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8-10-12 09:40:37 에듀인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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