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존감 공부 - (2)

윤필립 칼럼

엄마의 자존감 공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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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만 잘되면 된다’는 얘기는 너 혼자 온 가족의 꿈을 짊어지라는 얘기다. 그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절대 실패해서도, 비뚤어져서도 안 되며, 엄마가 정해준 길만 가라는 얘기다. 착한 아이들은 처음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엔 피해의식으로 발전한다. 가장 많이 받았는데 감사하기는 커녕 부모에게 당했다는 심정에 빠지는 아이러니. 착하디 착해서 엄마가 원하는 걸 줘야 한다는 생각과 그걸 못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안으로 곪아 병들어버린다. 부모가 준 죄책감을 지고 사는 아이들은 마음도 힘들지만 몸도 슬퍼진다. 한창 건강하고 활발하게 뛰어 다녀야 할 아이가 방 안에 틀어박혀 누워버리는 것이다. 마음에 상처나 짐이 없는 아이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그늘이 없다. 죄책감으로 자신을 망치고 부모와 멀어지는 대신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성취를 차근차근 해나가면서 당당한 성인으로 성장한다. 

 

살다 보면 자녀들 누구나 힘든 고비를 지나게 된다. 운명적으로 그 시기가 왔을 때 엄마는 기꺼이 아이들이 밟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땅이 돼줘야 한다. 엄마는 아이가 지하로 떨어졌을 때, 불행한 사건을 겪을 때, 온몸으로 받쳐주는 첫 번째 은인이 돼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다시 힘들 얻어 세상에 나가서 두 번째, 세 번째 은인을 만날 수 있다. 아이를 올라오게 하려면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고 믿으며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를 계속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마침내 올라왔을 때, 그 시간이 아픈 과거가 아니라 인생의 깊이를 만들어준 경험이었음을 함께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너의 그 깊이가 곧 높이라고, 그 깊이만큼 뿌리가 단단한 사람으로 커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엄마가 아이를 세심하게 돌본다면, 아버지가 줘야 할 것은 ‘여유’다. 그 무렵의 아이에게는 ‘걱정하지 마. 아빠는 네 편이야’같은 동지 의식과 전우애가 정말 필요하다. 남자 대 남자로 아버지가 인정하는 아들일수록 나중에 더 잘된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거리’다. 그건 부모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이에 따라서 ‘적당한 거리’는 계속 달라지지만, 분명한 건 서로의 반경과 공간을 침해하면 그 어떤 생명도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는 정신적으로 독립을 못 해서 병들기 쉽다.

 

자신감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평생을 끊임없이 일을 벌려본 내 경험으로 보자면, 자신감은 전적으로 ‘몸의 언어’다. ‘해보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내 육체가 막 움직여서 뭔가를 해내는 것. 그걸 보고 내 마음이 ‘나는 역시 믿을 만해’라고 속삭이는 것. 이렇게 몸과 마음이 신뢰를 구축해야만 생기는 게 자신감이다. 결국 자신감이라는 건 정서적인 언어가 아니라 완전한 육체 언어인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를 100번 외친다고 없던 자신감이 결코 생기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10프로의 자신감만 있어도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준다.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의 실패에 ‘좋은 경험했다. 이만하면 대성공이다’라고 말해주는 의연함과 비록 실패했더라도 아이의 자신감이 1프로 정도 성장한 것을 알아봐주고 함께 기뻐해 주는 성숙함이다. 초라하지만 뭔가 시작하기에 가장 적당한 ‘지금’에 용기를 주고 약간의 좌절을 포함한 빈약한 결과를 높이 평가해주자. 그 시작에는 언제나 엄마의 따뜻한 응원이 있다. 스스로 도전해서 받은 작은 실패, 작은 상처는 양질의 상처다. 아물면서 실패에 대한 해석력도 생기고 면역력도 높아진다. 예방주사를 맞아야 큰 병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실패를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진짜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엄마가 먼저 도전하고 실패해봐야,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가장 현명한 답을 줄 수 있다. 인터넷 카페에 물어봐서 얻은 답이 아닌, 오직 사랑하는 누군가의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답을 해줘야 한다. 엄마란 30년 먼저 태어나서 30년 먼저 실패하고, 그 경험을 통해 아이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아이들은 속박하지 않으면 자율성이 살아난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는 속박하면 할수록 잘 큰다고 착각한다. 스스로 아이들이 자가 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안 주고 호흡기를 갖다 댄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록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한 발짝도 옮길 수 없다. 모든 아이가 갖고 태어난 자율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밀어주는 건 인공법칙이고 공감하고 안아주는 건 자연법칙이다. 자연법칙이 충분히 채워져야 인공법칙이 먹히지 인공법칙만으로는 결코 아이들을 스스로 뛰게 만들 수 없다. 아이들은 밀어줘야 뛰는 게 아니라 안아줘야 뛴다.


거산 윤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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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필립  |  필리핀 중앙교회 담임목사, 아브라함 신학교 총장 

              저서 : ‘그들에게는 예수의 심장이 뛰고 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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