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의 탄생
국악의 한 장르로 여겨지는 사물놀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78년 2월 22일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공간사랑에서 남사당패의 후예를 자처하는 김용배(쇠), 김덕수(장고), 최태현(북), 이종대(징) 등 4명의 타악 주자가 앉아서 웃다리 풍물(경기, 충청도) 가락을 신명나게 연주하는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면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갖기 전에 있었던 이 날 공연은 사물놀이 탄생의 오프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공연 이후 다시 같은 장소에서 두번째 공연이 끝나자 민속학자 심우성은 이 공연에 “사물놀이(4가지 악기로 이루어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들은 다른 단체와 구별하기 위해 “김덕수패 사물놀이”라고 부른다.
창단 멤버였던 김용배, 김덕수, 최태현, 이종대는 곧 바로 김덕수, 김용배, 최종실, 최종석으로 새로운 팀을 구성했다가 1979년 최종석이 이광수로 교체 되었다. 이들의 연주가 호평을 받기 시작할 무렵인 1983년 꽹과리를 치던 김용배가 음악적인 견해 차이를 이유로 탈퇴하고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팀을 창단했으나 1986년 복잡한 추측을 남긴 채 자살하고 말았다. 김덕수사물놀이ㅍ는 김용배 대신 강민석을 영입해 이광수(쇠), 김덕수(장고), 최종실(북), 강민석(징)으로 자리바꿈을 한 채 이어오다가 1990년대 들어 이광수와 최종실이 떠나고 지금은 김덕수와 강민석이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을 창단(1993)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덕수, 이광수, 최중실, 김용배는 모두 어린시절을 남사당패와 함께 지내며 경기·충청지방의 웃다리 풍물을 했는데, 최종실은 경남지역에서 영남풍물을 한 탓에 가장 늦게 서울로 올라와 모두가 만나게 되었다. 이들 젊은 음악인들은 떠돌다가 다시 만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남사당의 자유로운 영혼의 외침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실내공연을 위한 레퍼토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김용배와 김덕수는 새로운 남사당 예술의 창조와 사명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어려서부터 외국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우리나라 전통 타악기가 외국의 타악기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는 세계적 보편성과 자부심에 공감하고 사물만으로 구성된 연주를 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먼저 어린시절 들었던 걸립패 가락을 정리하기 위해 선배들을 만나고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던 풍물, 무속음악 등의 가락을 보다 완벽한 형태로 다듬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통 타악의 가락을 크게 3가지로 분류했다. 풍물굿, 무속음악, 삼도 설장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먼저 민중들이 크게 즐기고 놀았던 풍물굿을 지역별로 습득하고 체계화 하는데 힘썼다.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의 웃다리가락, 호남지역의 우도가락, 경상도 일대의 삼천포 12자 등을 주력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다음으로 이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무속음악은 경기도 도당굿이었다. 경기도 도당굿은 복잡하고 화려하면서도 담백해 무속음악의 전통성을 대표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풍물굿 가락이 대단히 충동적이고 다채로운 흥취를 자아내는 것이라면, 경기도 도당굿 무속가락은 매우 서정적이면서 뭉클한 서정성을 자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주력한 영역은 삼도 설장고이다. 설장고는 장고의 으뜸을 뜻하기도 하고 판굿의 구정놀이에서 장고 가락의 기교를 한층 더 자랑하는 것인데 장고 가락의 음양성에 착안해 삼도지역의 장고 가락을 재편성하면서도 순도 높은 창작품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네 명의 연주자들이 내뿜는 예술적 열기와 탁월한 감각이 전통적인 삼도 설장고 가락과 만나서 유감없는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기에 이른 것이다.
사물놀이 연주는 남사당을 통해 이어져 온 전통음악의 신명나고 건강한 부분을 온전하게 계승함으로써 “국악은 따분하도록 늘어지는 음악” 이라는 많은 이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국악이야말로 한국인의 체질에 가장 잘 맞고 신명나는 음악”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들 김덕수사물놀이패는 국내외 수많은 음악가들과 협연했으며, 해외공연 횟수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덕수사물놀이가 원조가 되어 지금은 셀 수도 없는 사물놀이 연주팀들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전통 타악기의 대중성을 확인하면서, 우리나라 음악이 비단 음정을 나타내는 현악기나 관악기 뿐 아니라 타악기 또한 그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은정 | 전 UCLA 민족음악과 강사, 가야금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