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진학을 포기하려는 자녀에게 해줄 말 (1)
자녀가 의대 진학을 포기하려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냐는 단순한 질문에 담긴 어떤 부모의 안타까움이 필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으므로 이번 주와 다음 주, 두 주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기로 한다.
모든 학생이 의대에 진학할 필요는 절대로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적어도 의대 진학에 뜻을 두고 준비하던 학생이 중도에 포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 길이 부모가 등 떠밀어서 가던 길이었든 자녀가 스스로 택했던 길이었든 중도포기를 하는 자녀와 다음과 같은 대화 정도는 해봐도 좋을 듯 싶다.
의대 진학보다 더 관심이 가는 분야를 발견했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 첫 번째 질문이었으면 좋겠다. 의대 진학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못 하는 건지 알아야 그 다음 주제를 제대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적이 안 나와서 포기하는 건 아니냐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한다면 자녀 입장에서는 수치심을 느껴 대화에 소극적이 되거나 방어를 위한 까칠한 대화를 하게 될 수 있으니 그보다는 평생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보이는 분야를 발견했냐는 긍정적 태도의 질문을 하는 것이 자녀가 마음을 열고 대화에 임하기 쉽게 유도하는 방법이다. 만일 정말로 성적이 안 나와서 포기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부모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대화를 시도해 오는 가상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며 감사함과 송구스러움이 함께 존재하는 심리상태로 문제해결을 함께 하고자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테니 정말 해결하지 못할 엄청난 원인이 아니라면 충분히 대화 중에 그 해결책을 함께 발견하여 새로운 노력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해결책이 의대 진학보다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방향이 될 수도 있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의대에 성공적으로 진학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으니 첫 질문의 중요성이 대단히 크다고 강조하고 싶다.
장성한 자녀, 특히 의대 진학을 원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경우라면 명문대학에 성공적으로 진학하여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는 자녀일테니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부모의 입장에서 밀리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게 더 정상적인 경우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미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부모라면 자녀가 겪고 있는 현재의 생활을 가늠하기 쉽지 않으므로 주도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고 수동적이 되기 쉽다. 게다가 그렇게 똑똑한 자랑스러운 내 자녀가 설마 정보가 부족하여 못난 소리를 내게 하고 있다고 믿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천재이든 수재이든 스무살 먹은 학생은 그저 스무살 짜리 어린 어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중년의 부모에게는 삶의 지혜가 있다. 이 지혜는 절대로 스무살 짜리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연륜이고 경험치일 것이다. 아무리 내 자녀가 똑똑해 보여도 그 똑똑한 자녀를 키운 부모가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자.
대화의 첫 단추만 긍정적이고 부드럽게 시작한다면 부모가 지금까지 살며 깨달은 지혜를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해줄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첫 대화부터 신랄한 비난이나 부정적인 뉴앙스로 시작된다면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는 칼춤을 추는 무당보다 더 살기등등한 모습이 되기 쉽다.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가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이다. 이런 살기등등한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정이라면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 생활화된 아주 행복한 가정이거나 자녀 혹은 부모 한쪽이 일방적으로 퍼붓고 상대는 귀를 막고 지내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가정일 것이다. 그저 평범한 가정이라면 부모자식 간에 서로 큰소리를 내는 격앙된 대화 분위기를 겪어본 것이 정상이겠지만 자녀가 커갈수록 반대로 부모가 입도 열지 못하게 변해갈 수도 있다. 마치 과거에는 자녀의 입안을 검사해 충치를 확인하던 부모가 시간이 지나서는 자녀에게 입안을 검사당해 임플란트를 해야 할지를 검사 받는 어떤 TV 광고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직 대학생 자녀라면 일반적으로 강한 발언권은 부모에게 남아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자녀에게 옮겨 가려는 전환점에 접어들고 있을 것이고 자녀가 의대에 이미 진학한 가정이라면 반환점을 돌아 무게 중심이 옮겨진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자녀가 레지던트가 되어 있거나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제 더 이상 컨트럴이 불가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 상황에 처한 가정이든 부모의 지혜를 아끼지 말고 나누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마치 하버드 의대를 나와 세계 최고의 병원에서 레지던시를 마친 젊은 의사가 아직도 필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내용을 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필자의 때묻은 삶의 지혜를 나누어 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필자가 그들과 나누는 지혜란 실상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충분히 들을 수 있을 내용이겠지만 부모에게 그런 속내를 털어놓지 못할 따름으로 보인다.
또한 영특한 젊은이와의 대화에서는 잘 들어주고 있으면 그들이 조리 있게 질문하려고 생각을 정리하며 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일도 다반사다. 즉, 잘 들어 주기만 해도 뛰어난 조언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중년의 삶의 지혜가 더해진다면 어떤 젊은이도 당해내지 못할 최고의 조언자가 된다. 즉, 모든 대학생의 부모는 이미 최고의 조언자가 될 조건을 갖추었다. 자녀가 꺼낸 대화의 첫 마디가 부모의 성에 차지 않을 경우에 날카로운 반응을 참고 긍정적인 반응만 보이며 자녀가 대화를 지속할 수 있도록 들어줄 귀만 갖고 있다면 그 자녀가 인생에서 낙오할 일은 절대로 없다.
듣는 귀에 삶의 지혜, 그 위에 욕심을 조금 내서 전문지식까지 갖춘다면 해당 가정의 자녀는 분명 의대에 성공적으로 진학할 것이고, 설혹 의대가 아니더라도 자녀 스스로가 더 행복해질 그 길을 잘 택해 나아갈 것이다.
다음 주에는 의대 진학을 포기하려는 자녀와의 대화에서 꼭 알아야 할 참고사항 몇 가지를 함께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