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구사능력이 의대 진학에 끼치는 영향
한국어를 잘하면 의대 진학에 도움이 되냐는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을 한 당사자는 용기를 내어 궁금한 사항을 문의한 것일테니 차분하게 한인학생이 한국어를 잘 하면 미국에서 의대에 진학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유를 살펴보자.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면 미국은 다문화 사회라는 명확한 사실 때문이다. 의료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언어소통이 중요한 분야이므로 의료계는 각 언어사용 구성원들이 그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의사를 해당 커뮤니티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소극적 해결책으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종합병원에 기본적으로 다양한 언어별로 통역을 맡고 있는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있고 그 외의 병원에서도 전화로나마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좀 더 적극적인 해결책으로는 의대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가능하다면 문화 및 인종 그리고 언어별로 균형이 맞게 학생을 선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미국 전체 인구의 6% 남짓의 동양계 학생들이 의대생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균형을 맞춘 학생선발의 결과인가라며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타 인종 학생들에 비해 월등하게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봉사하는 동양계 학생들에게는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시켜 선발하고 있고 그에 반해 타 인종 학생들에게는 훨씬 허술한 기준을 적용시켜 선발한 나름대로 노력의 결과가 바로 동양계 학생이 20% 선에 머물고 있다는 현실이다.
만일 동등한 학습능력 및 기타 성취도에 따른 기준을 적용시켜서 의대생을 선발한다면 동양계 학생들이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게 될 일이 자명하니 그 여파로 특정 인종의 학생들은 의대에 진학할 기회가 박탈될 위기에 처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런 현상은 사회전체를 위해서는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동양계 학생의 경우라면 의대에 원서도 못 내볼 그런 성적을 갖고도 타 인종 학생은 명문 의대에 합격하는 기이한 현상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일한 언어를 구사하는 의사를 갖는 것은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현실이 미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동일한 조건의 한인학생 중에서는 한국어를 잘 하며 한인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한인학생이 의대 진학에 유리하다는 사실도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여기는 미국이다. 영어를 주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누구든지 의사가 되고자 한다면 미국 내 어디에서도 진료를 할 수 있을 수준의 영어구사력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당연히 영어를 잘 하는데 추가적으로 한국어도 잘 한다면 금상첨화'라는 의미로, 미국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의사가 단지 한국어로만 진료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구사력을 보인다면 그것은 결격사유가 된다. 미국에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이 의대에 합격하지도 못할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일이 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는 아무도 없겠지만 실제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가끔 영어구사력이 매우 떨어지는 학생이 있다. 평소에 필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던 영어 독해력 부족과는 또 다른 문제점이지만 영어 독해력과 상관관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독특한 부분이다.
특히 한인 남학생들 중에 이런 경우가 더 많이 발생하는데 발음이 안 좋은 경우도 있고 어휘력이 월등히 부족한 경우도 있으며 표현력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주로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이주해 왔으므로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학생들이다 보니 혹시라도 한국어 구사력이 미국 의대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제목만 읽고 오해를 할까 우려되어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한국어 구사력은 부가적인 능력이지 핵심사항은 아니다. 추후에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피력하는 유학생의 경우라도 영어 구사력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이지만 그나마 유학생의 경우에는 높은 독해력 성적이 뒷받침된다면 발음이 조금 어눌한 경우라도 합격의 가능성은 높으니 예외적인 경우로 알고 있자.
그렇다면 한인학생이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 경우를 의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기본적으로는 좋게 본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논리를 적용시켜 해당 언어를 좀 더 잘 이해하겠다는 노력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15살까지 살았다는 학생이 고급 한국어가 아닌 기초 한국어를 수강하여 A를 받았다고 가정하면 이런 학생은 참 가벼운 인품의 소유자로 분류될 수도 있다. 정확한 학문적 분류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미루어 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경향을 알게 되었다. 30년 넘게 미국에 살며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항이니 그리 많이 틀린 정보는 아닐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이주해온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 왔든 공히 적용되는 일이라는 것을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대개 알고 있다 보니 의대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뿌리를 알고자 하는 노력'과 '얕은 재주를 부리는 잔꾀'정도는 쉽게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렇다고 한인학생이 한국어 수업을 듣지 말라는 얘기가 아님은 절대로 강조한다. 실제로 자신의 한국어 혹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의 일환이라면 적극적으로 권장하지만 매사에 진중하게 접근하라는 의미일 뿐이다. 말은 한국말을 할지라도 책은 영어로 읽는 노력은 30여년 전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필자를 비롯한 모든 유학생들의 숙명이었지만 요즘은 그것 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토플시험에 영어 구사력 측정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만 봐도 옛날 유학생들의 영어발음 수준으로는 더 이상 미국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한인학생이 한국어를 잘 한다는 건 장점이 맞지만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때만 부각되는 장점이다.
남경윤 | 의대진학 전문 멘토 kynamEducati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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