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진학을 포기하려는 자녀에게 해줄 말 (2)
지난 주에 언급한 의대 진학을 포기하려는 자녀와의 대화에서 꼭 알고 있어야 할 참고사항 중 으뜸가게 중요한 것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대부분의 경우,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므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중도에 의대 진학을 포기하는 것을 심각히 고민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성적에 관한 고민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지 않기 바란다. 물론 특정 과목에서 A를 받기는 했지만 그 과목에서 A를 받기 위해 학생이 투자해야 했던 노력과 시간이 너무 과도하다고 느낄 경우에도 성적 때문에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자 한다는 범주에 드니 이 점도 참고하자.
성적에 대한 고민 말고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기웃거리는 다른 원인 중에는 자신의 효용가치에 관한 심각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아주 건강한 고민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녀가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부모의 강력한 바람이라면 세상에 둘도 없이 쓸데없는 고민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외의 경우라면 박수를 쳐주며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중도에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가는 학생들도 있다는 것도 참고하자.
원인이 성적관리 때문이라면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답이 있다. 시간을 더 투자하면 된다. 답은 추가시간 투자라고 명쾌하게 제시했으므로 여기서 불편한 진실 한 가지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학습능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모든 부모가 하버드 의대를 나오지 않았듯 자녀들의 지적능력과 학습능력은 하버드 의대에 다니는 학생들과 다를 수도 있다. 특히 부모가 학창시절에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이지 않았는데 자녀가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이기를 바란다면 요행을 바라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부모의 학창시절과 자녀의 학창시절을 비교하여 자녀의 환경이 훨씬 공부하기 좋아졌다고 믿는 부모가 대부분이겠지만 그건 다른 집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통의 보편적 장점이지 내 자녀에게만 적용되는 독보적인 장점이 아닐 수도 있다. 또한 부모가 엄청 뛰어난 지적능력과 학습능력을 갖췄다 할지라도 자녀에게 그 능력이 전달되지 못했다면 그것 역시 자녀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낳은 부모의 잘못이니 누구 탓을 해야만 한다면 자녀를 탓하지 말고 부모 스스로를 탓하는 것이 맞다. 누굴 닮아서 공부를 못하냐는 말은 부모 스스로를 원망하는 푸념으로 쓰이는 것이 맞지 자녀에게 할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또한 지적능력과 학습능력을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도 없을 수 있다. 두뇌구조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꼭 공부하는데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자녀와 대화를 시작해야 하겠다.
이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과외비나 학원비를 포함한 물질적 지원을 풍부하게 해줬는데 성적이 안 나온다고 낙망한다면 부모와 자녀 모두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길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인정한다면 모든 문제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쾌하게 해결이 된다. 지옥불은 간 곳 없고 평화로운 가정과 평탄한 자녀의 앞길만이 보이게 될 것이다. 주어진 현실상황을 인정하고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패배감만 없앤다면 말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단순 명료한 원칙을 적용해서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던 학생들을 의대에 진학시킨 경우가 최소 수백 명이니 아마도 필자를 믿고 시도해 봐도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 학기에 수강하는 과목수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 한 학기나 일년을 휴학하며 지친 심신과 독해력 증진 등을 다듬는 것도 아주 고무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복구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성적으로 4학년이 되어 있다면 서둘러 졸업하고 포스트백 과정을 통해 재기를 노려볼 수도 있다. 시간을 아낀다고 망가진 성적은 방치한 상태로 MCAT 학원에 등록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학원만 배부르게 하는 미련한 욕심이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야 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은 다시 공부해서 자기 걸로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며 그 마음가짐이 없다면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이런 현상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올바른 자연의 섭리 중 일부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분명히 짚고 갈 부분이 있다. 필자가 이런 조언을 하는 것은 의대 진학이 모든 젊은이들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필자의 전문분야가 의대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그들이 원하는 의대에 진학시키는 것과 의대생들을 위해 그들이 원하는 레지던시 과정에 매칭시키는 것이다 보니 필자에게 주어진 질문들이 의대에 진학하는 것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고 그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절대로 의대 진학하면 성공적인 젊은이고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실패한 젊은이라고 믿고 살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며, 필자의 칼럼을 아끼며 접하는 여러분도 역시 그렇게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답을 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자신의 더 나은 효용가치에 관해 고민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칭찬부터 해주며 대화를 시작하자. 실제로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인류의 미래는 밝고 희망적인 것이다. 그 고민은 남의 집 아이들만 해야 하고 내 아이는 꽃 길만 걸었으면 하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의 마음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다른 이들이 칭찬하는 삶을 내 자녀가 걷고자 한다면 멋진 녀석이라고 인정하고 그렇게 멋지게 자녀를 키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자.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잘못된 길을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차츰 적응이 될 것이고 자녀와 같은 창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점점 더 공통적인 대화의 주제도 늘어날 것이고 그 자녀가 훗날 받을 모든 존경은 온전히 부모에게도 주어질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부모가 그 자녀를 자랑스러워하고 멋진 녀석이라고 칭찬하게 된다면 그 자녀의 삶뿐 아니라 그 부모의 삶도 의미 있는 것이지 의대에 못 가서 속상해야 하는 삶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고 자녀가 원하는 분야로 가게끔 부모는 무조건 방관만 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대화를 잘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고 그래서 성적이 부족한 경우가 훨씬 쉬운 경우라고 한 것이다. 성인이 된 자녀와의 대화는 정말 어려운 일임을 모르는 부모가 있다면 그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남경윤 | 의대진학 전문 멘토 kynamEducation@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