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둘, 전설의 시작 Miles Davis
올해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탄생 9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리고 그의 사망으로부터는 25년이 흘렀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새로움을 꿈꿨다. 그가 재즈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아이콘이 된 데는 이러한 도전 정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인물이 반세기에 걸쳐 장르 음악을 이끈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 음악계 밖에서도 추앙과 존경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연주에 관해 한번 생각해보자. 40년대 비밥(Bebop) 시대에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아주 눈에 띄는 연주자는 아니었다.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처럼 현란한 기교로 가득한 속주에 능한 연주자가 아니었고, 재즈 뮤지션들이 프레이즈의 끝에 즐겨 쓰는 비브라토(Vibrato, 음을 떠는 기법)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재즈 트럼페터들이 추구하는 뭉툭한 트럼펫 소리를 그는 내지 않았다. 클래식 연주자들처럼 트럼펫의 정교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추구했다.
이러한 마일스 데이브스의 연주가 가진 특징은 그가 클래식 공부로 음악을 시작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수석 연주자에게서 트럼펫을 배웠고, 이후에는 클래식 음악 학교인 줄리아드 음대에 진학했다. 물론, 재즈가 하고 싶어 중퇴하긴 했지만, 그의 음악적 배경과 근간에는 클래식이 있었다. 재즈 연주자의 삶을 살면서도 클래식을 향한 그의 애정은 자주 드러나곤 했다.
가령, 1958년에 발표한 앨범 [Porgy And Bess]는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오페라 <Porgy And Bess>를 편곡한 작품이다. 오페라이기는 하지만 조지 거슈인이 (훗날 재즈 스탠다드가 되는) 수많은 뮤지컬 넘버를 쓴 작곡가이고, <Porgy And Bess> 역시 흑인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며 재즈, 블루스 등의 흑인음 악으로 채워진 작품이었기에 재즈로 편곡하기에는 비교적 수월했다. 물론, 극복해야 할 부분이 존재했다. 클래식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관현악을 재즈 음악으로 편곡해야 했던 것. 여기에 천부적인 편곡가 길 에반스(Gil Evans)가 투입됐다. 그는 재즈 관악기들이 클래식 현악기들의 소리를 묘사하는 탁월한 방식으로 편곡해 냈다. 재즈와 클래식의 중간 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서드스트림(Third Stream)으로 불리게 된다. 서드스트림이 어느 장르에 더 가까우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마일스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음악이야. 그리고 난 이게 마음에 들고 말이지."
2년 뒤에 발표한 [Sketches Of Spain]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은 스페인적인 감수성을 머금고 있다.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한데, 그는 스페인 클래식 작곡가들의 악보를 연구하고, 민속 음악을 감상했으며,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의 시집을 읽고, 스페인 역사와 인류학을 탐구했었다. 이 시기에 마일스 데이비스는 자신의 몸 안에 아랍인의 피가 흐르고 있단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게는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서 생활했던 이슬람계인 무어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는 그가 스페인의 음악과 감수성을 담은 앨범 [Sketches Of Spain]을 작업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Sketches Of Spain]에는 스페인 클래식 음악이 실렸다.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의 아란후에스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 중 2악장을 편곡한 "Concierto De Aranjuez (Adagio)",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의 발레곡 사랑은 마술사(El Amor Brujo) 중 "도깨비불의 노래"를 편곡한 "Will O' The Wisp"가 실리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길 에반스가 편곡하는 데 수월한 악장을 선곡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Porgy And Bess>에서 현악기가 자주 사용됐다면, 이 두 곡에선 현악기의 존재감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현악기 특유의 매끄러운 선율이 아닌 짧게 끊기는 리듬을 강조했기 때문에 재즈 관악기로 표현하기에 수월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60년대 중반에 몰두했던 장르는 포스트밥(Post-Bop)이다. 40, 50년대 유행했던 하드밥의 전통과 프리 재즈(Free Jazz)의 요소가 겹치며 탄생한 장르다.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은 포스트밥의 리듬감과 질감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추상적인 표현, 기존의 형태에서 탈피한 자유형식은 프리 재즈(Free Jazz)에 맞닿아 있기도 했다.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음악인 포스트밥은 전통과 혁신을 모두 담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포스트밥의 개방적인 성격은 퓨전 재즈로 발전할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 대표적인 앨범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1968년 작 [Miles In The Sky]다. 그가 바로 직전까지 선보였던 포스트밥을 근간으로 삼았고, 그 위에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일렉트릭 피아노, 론 카터(Ron Carter)의 일렉트릭 베이스를 쌓았다. 이는 1960년대 록에 밀려 완전히 비주류 음악으로 전락한 재즈의 마지막 발악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의식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주요 동력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늘 혁신을 추구했다. 생각해보라. 비밥 이후로 등장한 거의 모든 재즈 장르의 탄생에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기여가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퓨전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앨범은 [Bitches Brew]다. 많은 사람은 이 앨범이 퓨전 재즈의 효시로 본다. 그런데 바로 앞서 살펴봤듯, 마일스 데이비스는 퓨전 재즈 앨범을 앞서 발표했었다. 하지만 단순히 시기적인 관점에서 볼 문제는 아니다. 다른 장르의 요소들을 얼마나 잘 가져와서 구성지게 접목했느냐로 따져본다면 [Bitches Brew]를 마일스 데이비스의 커리어에서 그 첫 번째 작품으로 꼽히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록, 훵크, 전자음악을 접목한 [Bitches Brew]는 포스트밥에서 전통과 혁신의 공존이 큰 폭으로 확장되는 결과를 낳았다. 퓨전 재즈지만 쉽게 귀에 꽂히는 앨범은 아니다. 나 역시도 그랬고, 많은 사람이 이 앨범을 추천 받고 듣다 절망하고 말 것이다. 직관적으로 읽어내긴 어렵지만, [Bitches Brew]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장르 음악의 요소들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명작임을 확인할 수 있다.
Francis Kim | EEI NExtGen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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