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갈 때마다 (02)
지난 칼럼에는 여행을 갔을 때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매개체 중 돌 수집과 도감 만들기의 예를 들어 보았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대부분 내가 소유하여 가져 올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약간의 채집물, 기념품일 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다.
찍은 사진들을 수시로 보며 기억을 더듬어 그 시간으로 돌아가 생각해 본다. 사진들을 보다 보면 몇 군데 들러 구경했지만 유난히 마음에 드는 장소의 사진들이 더 많다. 만약 그런 장소를 발견했다면 좀 더 시간과 기록의 방법을 투자해 보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소를 부모님들이 잘 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여행 전 몇 가지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나누어 정하는 것도 좋다. 정했다 하더라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장소 발견은 즉흥적으로 해도 무방할 듯 싶다.
예를 들어 어느 도시에 도착했는데 거리를 다니다가 식사를 해결 할 식당을 발견했다고 하자. 대개 많은 사람들은 먹기 전에 아름다운 접시에 놓인 음식들 사진 찍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좀 더 세심히 식당 인테리어와 내 감정, 옆 사람의 기분, 옆 테이블의 분위기, 음식의 향과 맛, 색 등을 시간을 내어 천천히 즐겨보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다 못해 질릴 정도로 그 분위기 안에 있어야 한다. 일단 가르치는 어른이 어떤 분위기든 소화하고 즐길 수 있어야 아이들에게 가이드를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오감을 다 살려 느끼고 서로 이야기를 해 본다. 일단 서로에게 또는 자신에게 많은 표현을 해야 내가 가져올 수 없는 그 장소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표현 방법으로는 그림 그리기가 있다. 잘 그리는 사람들이야 아무데나 앉아 아무 펜이든 스케치를 척척 할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준을 그쪽에다 두면 그리기를 시작하는 두려움 이 생기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냥 각자 준비한 조그만 수첩에 펜으로 낙서하듯 그리면 된다. 나만 알아보면 되는 것이다. 본인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옆에 자세한 메모를 곁들인다.
그림보다 글쓰기에 더 관심 있다면 뭐 이런 것도 적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세히 묘사해 본다. 순간의 옆 사람 표정, 소리, 나의 감정, 이 동네 사람들의 삶에 대한 추측까지도 적어본다. 대화를 하면서 적어 보는 것도 좋다.
같은 것을 보지만 아이와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서로에게 좋고, 쓰기가 힘든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이가 한 말, 질문들을 기록할 수 있다. 또한 어린 아이들과 함께라면 녹음하는 것도 재미있다.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 올 수 있다. 여행이 끝난 며칠 후 기억을 되 살리며 수첩에 그린 스케치를 그대로 오리거나 글들을 정리해 간단한 책 만들기를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어느 장소이든 상관없다. 다만 시간을 충분히 내어 그 순간을 즐기며 방법의 어색함을 극복한다면 평소와는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시간들일지라도 '창조적 삶으로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식당에 와서 '가족끼리 후딱 밥 먹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으로는, 이런 생각과 행동이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습관이 되었을 때, 이를 통해 단순한 삶이 얼마나 풍부해지는가는 시도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 아이들이 훌쩍 커서 지식의 입력, 선별과 글쓰기 등 표현 출력을 요구당할 즈음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김경희: abgo.ed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