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하나, Jazz x Hiphop (02)
더운 여름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여름방학을 맞은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인지 마음이 썰렁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살려 독자 분들께 그간 꼭 알려드리고 싶었던 음악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한다.
많은 사람이 재즈와 힙합의 첫 만남으로 "Jazz Rap"이란 곡을 꼽는다. 영국의 퓨전재즈 뮤지션 마이크 카(Mike Carr)가 이끄는 밴드 카고(Cargo)의 1985년 싱글로, 퓨전재즈 연주 위에 랩을 올린 곡이다. 재즈와 랩의 만남으로는 이 곡을 꼽는 게 맞지만, 사실 재즈와 힙합이란 넓은 범주에서 본다면 최초라고 할 수는 없다. 이 곡에 2년 앞서 힙합의 요소들을 차용한 재즈 뮤지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과 혁신을 오간 허비 행콕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은 60년대 재즈의 아이콘이다. 그는 1964년에 본격적으로 출범한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제2기 퀸텟’의 중심축이었다. 그곳에서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끌었던 포스트밥(Post-Bop)의 흐름을 최전선에서 맞이했다. 그는 사이드맨으로서도 대단했지만, 밴드 리더로도 탁월한 재능을 펼쳐냈다. [Talkin' Off]로 블루노트(Blue Note Records) 레이블에서 데뷔한 그는 [My Point Of View], [Empyrean Isles]. [Maiden Voyage]. [Speak Like A Child] 등의 앨범을 모두 명반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60년대 블루노트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올라섰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와는 달리 비교적 친숙하게 감상할 수 있는 하드밥(Hard Bop)과 소울재즈(Soul Jazz)를 선보이곤 했었다. 그렇게 그는 50년대와 60년대 재즈 이디엄을 모두 소화해 냈었다.
1969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퓨전재즈 앨범 [In A Silent Way]를 마지막으로 허비 행콕은 마일스 데이비스와 결별한다.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말년기에 접했던 퓨전재즈에서 영감을 받은 허비 행콕은 퓨전재즈 앨범을 연달아 발표한다. 그와 늘 동일 선상에서 비교되는 웨인 쇼터(Wayne Shorter/색소폰)나 그의 음악적 멘토였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록을 집중적으로 활용했던 반면, 허비 행콕이 택한 것은 훵크(Funk)였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과 같은 정통 훵크 밴드에서 힌트를 얻은 그는 여러 앨범을 발표했고, 그 정점은 [Head Hunters]였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V.S.O.P을 결성하여 전통적인 재즈를 고수하기도 했다. 이 밴드는 허비 행콕과 웨인 쇼터,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트럼펫), 론 카터(Ron Carter/베이스), 토니 윌리엄스(Tony Williams/드럼)로 이루어진 드림팀이었다. 프레디 허버드가 마일스 데이비스를 대체한 점을 제외하면, 마일스 데이비스 제2기 퀸텟의 멤버 그대로였다.
그런 데에는 그의 음악적 욕심이 크게 자리했다. 그는 퓨전 재즈와 전통 재즈 모두를 닥치는 대로 탐닉했다. 그 과정에서 혁신적인 순간을 자아내기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1983년에 발표한 앨범 [Future Shock]는 친숙함과 낯설음 그 중간점 정도에 위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Future Shock]는 그가 70년대에 선보였던 훵크에서 발전한 일렉트로훵크(ElectroFunk)를 기반으로 한 앨범이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익숙했지만, 바로 전년도에 발표한 앨범 [Quartet]이 하드밥의 전통에 기댄 작품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갑작스러웠다.
앨범은 진취적이고 신선했지만, 그들이 예상했던 것만큼 난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중적이었다. 앨범의 리드싱글 "Rockit"은 빌보드의 알앤비 차트와 댄스 차트에서 각각 7위와 1위를 기록했으며, 전체 싱글 차트에서도 71위를 기록했다. 본 싱글은 1990년까지 5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가 골드 레코드를 달성했으며,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선 ’최우수 알앤비 연주상‘을 수상했다. 싱글이 수록된 앨범 [Future Shock] 자체도 판매가 백만 장을 넘어서며 플래티넘 레코드를 달성했으니 ’포스트모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이들의 계획과는 달리 대중적인 성과를 일궈낸 것이었다.
급기야 "Rockit"으로 제1회 MTV VMA에서 ‘최우수 비디오 컨셉상’을 받기에 이른다. 이는 해당 뮤직비디오를 보면 납득이 간다. 영상 속에선 하반신만 있는 로봇이 사람들로 가득한 거실을 돌아다닌다. 알고 보면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도 로봇이다. 이들은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창 밖의 새조차도 로봇이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곤 로봇들이 시청하는 TV 속의 허비 행콕 뿐이다. 로봇들은 DJ의 스크래치 소리에 맞춰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반복한다.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미래지향적이고 실험적인 음악관은 이 영상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앨범 제목은 1970년 발간된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저서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에서 따온 것이다. 정확히는 훵크/소울 뮤지션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1973년 발표한 곡 "Future Shock"으로 책의 제목을 가져왔고, 허비 행콕이 커버한 곡을 앨범에 수록하면서 앨범 제목도 따라서 지었다. 제목을 공유하지만 각기 주장하는 바는 다르다. 책에서는 미래사회의 급격한 사회/문화의 변화에 집중했다면, 커티스 메이필드는 베트남 전쟁의 비인간성을 주장했다. 허비 행콕은 커티스 메이필드의 노랫말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노랫말의 의미보다는 곡의 제목에 있는 ’충격‘이란 단어에 더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미래지향적이고 신선한 음악을 통한 매력적인 자극이랄까.
Francis Kim | EEI NExtGen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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