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우리나라는 해방 후 6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수탈, 그리고 전 국토를 잿더미로 만든 6·25의 참화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서양사회가 수 백 년에 걸쳐 서서히 이룩한 고도의 경제적 성장을 불과 몇 십 년 만에 일궈냈습니다. 그러나 외형으로 보이는 화려한 발전과 풍요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내면에는 풍요가 깃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살률은 몇 년 째 OECD 국가의 평균 두 배를 넘는 수치로 압도적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고, 특히 학교 폭력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청소년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UN의 2012년 ‘세계 행복보고서’는 한국인의 행복도가 150개 회원국 중 56위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외국)보다 뒤진 것에 대한 조급증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궁핍에서 탈출해야 했기에 앞만 보고 달리기에 바빴습니다.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치중하다 보니, 무한경쟁의 레이스에서 뒤처진 사람은 낙오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그 과정에서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 함께 갈 여유도, 피곤하고 지친 마음의 아우성도 들어 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그 후유증으로 곳곳에서 아파하고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 속에 빈곤’ 그리고 ‘정신건강의 위기’라는 아이러니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 감기만 걸려도 병원을 찾고, 늦은 시간까지 헬스클럽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유독 정신건강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WHO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결코 정신적, 영적으로 안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인 면을 소홀히 한 결과가 지금 우리 사회에 위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건강을 “일하고, 사랑하고, 놀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정신건강 문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아무리 소득이 늘어나고 몸이 건강하다고 해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교감할 수도 없으며,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소홀했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고 심신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정신건강을 가꾸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돌아보는 노력이 다음으로는 마음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돌아본다는 것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신체 감각에 조금만 변화가 와도 반사적으로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하면서도 마음이 보내는 신호는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이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는 과정에서 우리가 입은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와 위안을 갈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마음이 지금 우울한지, 불안한지, 얼마 동안 이랬는지 되돌아보면서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포착한 다음에는 마음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울증이나 불면증과 같은 질병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치료를 받아야 하고, 질병이 없더라도 더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강해지듯이, 마음도 노력하기에 따라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키워 나갈 수 있습니다. 천재교육 칼럼은 청소년에게 필요한 마음건강 정보와 적절한 대처방법 그리고 치료방법을 소개하고 그 여정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①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 내재된 생존 시스템
수많은 용어 중에서도 스트레스(stress)만큼 자주 사용하는 단어도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 하면 막연히 ‘나쁘다’라는 이미지만 그려질 뿐, 정작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는 라틴어 ‘stringer(팽팽히 죄다, 긴장)’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생리학자 Canon은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stress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생명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존수단으로 fight-flight response(투쟁-도피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이때 일어나는 homeostasis(생리적 균형)을 규명한바 있다. 이후 1936년 캐나다의 Hans Selye가 스트레스를 ‘개인에게 의미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외적, 내적 자극’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학술적 정의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스트레스는 생명체가 외부의 환경이나 내부의 변화에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싸울지 도망갈지 빨리 결정하게 하는, 그야말로 객관적인 ‘내적 생존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이 잘 작동할수록 우리는 응급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막을 걷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길쭉한 물체가 사사삭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몸은 바로 긴장을 하면서 심장 박동수가 늘어나고, 호흡과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작은 소리나 촉각에도 매우 민감해진다. 아주 짧은 시간, 우리 몸은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고 여기고 전투와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게다가 1/10초의 짧은 순간에 ‘싸울까? 도망갈까? (fight or flight)'를 결정해야 한다. 만일 그게 그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였다면 바로 경계태세를 풀겠지만, 방울뱀이었다면 줄행랑을 쳐야 한다. 이때 민첩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다. 선조들이 먹이를 사냥할 때도 이 같은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는데 이는 사냥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결국 스트레스란 인간이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변화하기 위한 기능 중 하나인 것이다.
인간은 이런 생리적인 반응에 더해서 스트레스 반응을 발전시켜 왔다. 심리학자 Lazarus는 인간은 학습능력을 이용해서, 전에 일어났던 일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전에 겪었던 경험을 되살려 위험에 대비하는 이른바 ‘예측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불에 한 번 데인 어린아이는 그 후에는 불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거나, 불이 가까이 오면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려 피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이 동물보다 스트레스를 더 잘 다루고 환경에 적응하게 된 비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스트레스 반응을 발전시켜온 노력이 이제는 현대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중요한 시험에 한번 실패한 학생은 시험이란 말만 나와도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긴장도는 올라가게 된다. 실패는 호랑이나 늑대와 같이 눈에 보이는 실체나 목숨과 관계된 위협이 아니다. 그러나 실패한 학생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시험을 두려워 하게 되고, 긴장해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즉, ‘실패의 경험’이라는 무형의 기억이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꼭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긴장 등 나쁜 스트레스도 있지만, 좋은 일로 흥분을 해도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예컨대 상을 받기 위해 연단 앞에서 기다릴 때의 긴장, 입학 또는 졸업식장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릴 때의 두근거림 등도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불편하고 괴로운 스트레스를 ‘distress’라고 하고, 좋은 일이지만 자율신경계가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것을 ‘eustress’라고 부른다.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한국 선수가 골을 넣자 환호성을 지르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은 유스트레스(eustress)가 지나쳐 벌어지는 일이다.
② 스트레스는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해야 할 도구
많은 이들이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든다. 스트레스가 불러오는 병은 암(cancer)에서부터 가벼운 감기와 발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만병의 근원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웬만한 스트레스로는 몸에 무리가 오거나 신체 기능이 손상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의 작은 스트레스라도 계속되면 문제가 생긴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