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을 지켜라 – 미국은 미국다워야 한다. (2)
[잃은 것은 10억엔 뿐이다.]
이 말은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합의 직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기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한국 정부가 세운 재단에 일본정부가 주겠다는 돈이 10억 엔이다. 한국돈으로 98억원 정도되는 이 액수는 한국정부 1년 예산의 3000분의 1이며, 박정희 기념사업회의 2016년 예산의 4분의 1이 채 안되며,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대호 선수의 2년치 연봉이다.
작성된 합의문도 없이 각자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이 합의는 양국 정상이 서명을 했다거나 한 합의문 자체를 만들지 않았으므로 합의의 법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사안자체가 대통령의 결단 없이는 합의 될 수 없는 것이며 정치적 합의를 한 것과 국제 사회에 정치적 합의로 알려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합의 직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통화를 했다는 것 또한 밝혀진 사실이다. 항간에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아베 총리의 외교 참모가 실제 협상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주일한국대사를 맡은 지일파로 예전부터 한일관계 복원을 주장해오던 친일적인 인물이다. 이번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의 외교 자문 그룹의 핵심적인 인물인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이 12월 22일 서울을 방문하여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고, 이 내용을 야치 국장은 아베 총리에게 보고를 하고 이병기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으며, 이후 12월 24일 아베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에게 한국에 가서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만나 마무리를 지으라는 지시를 내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양국의 국내 사정을 고려하여 합의 발표문의 내용에 양국 정상의 이름은 빠졌지만 실질적으로 양국 정상간의 합의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10억엔을 받기로 하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했다는 말이다.
전범국가인 일본이 다시 전쟁국가로 변모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중의 하나가 일본판 NSC(국가안전보장회)인 국가안전보장국의 창설이다. 국가안전보장국의 국장이라는 자리는 일본 방위청(국방부)장관보다도 상위에 있는 일본 외교 안보의 총사렵탑이라고 할 수 있다.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은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대중국 전략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 말은 곧,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한일 양국간의 과거사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일본의 최고사령탑이 동원되었다는 뜻이다.
[미국, 일본, 박근혜]
미국은 이번 합의가 발표된 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최고 걸림돌인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환영일색의 반응을 보였다. 또 이번 협상의 최대 수혜국은 미국이라는 주장과 미국의 막후 외교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어째서 그럴까?
이번 협상이 2016년으로 넘어오지 않고 2015년 말에 급하게 처리됐어야만 했던 이유는 미국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이 연내 타결을 해달라는 가이드 라인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는 미 국무부가 의회 보고 시한을 맞추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번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도 미 국무부가 미 의회 등의 여러 대의기관에 연내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유사한 전례가 있다.) 또한 작년 10월 16일에 있었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연내 타결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도 있다.
그 무렵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한국을 향해 연일 강경한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었다. 미 국무부의 웬디 셔먼 정무차관은 한국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민족감정을 악용하여 값싼 박수를 받아내기란 어렵지 않다”는 모욕적인 막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한국을 압박했다. 그 동안 일본에 대해 강경 드라이브를 견지해 오던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열병식에 참가한 이후 미국의 눈치만 보다가 방미 직전부터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부가 외면한 것을 자신들이 어렵게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이렇게 경색된 원인중의 하나는 집권 전반기 2년 동안 한일관계 개선의 선결 조건으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고, 정상회담도 없다고 차갑게 말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180도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한일 관계는 위안부 문제와는 별개로 지정학적인 상황으로 볼 때 결코 단절할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한일 관계를 어떻게든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워 한일 관계를 완전히 경색시켜 놓고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고 발표를 했다.
[반기문 사무총장]
한편 이번 합의 내용과 관련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발언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새해인사 전화를 걸어 "양국이 24년간 어려운 현안이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것을 축하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올바로 용단을 내린 것을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은 반기문 사무총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통화 내용이라고 청와대가 언론에 배포를 한 것이다. 언론보도 이후 인터넷에는 발언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비난의 글이 넘쳐났다.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겪어온 피해자들을 위로하거나 타결을 축하한다 말은 고사하고 합의의 주체인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단 한번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전과 용단’이 주어가 되었고 ‘역사가 평가’가 술어가 되어 있었다.
독일의 사례를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위안부 문제와 같이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있을 경우에는 국가 대 국가의 사과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나 일본 군 관계자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 뒤 배상을 하는 절차로 진행되어야 한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식민지배세력이 구체적으로 피해를 준 피지배국의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도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지 국가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은 없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번 합의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인 유엔사무총장이 내뱉은 말은 많은 국민들에게 분노와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속셈]
그 동안 일본에 의해 피해를 입은 나라들은 위안부 문제를 ‘역사 기록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이미 중국의 난징 학살 사건이 등재가 되어 있으므로 위안부 문제도 등재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 기록의 유네스코 등재가 아니라 일본에 의한 전쟁 범죄를 공식화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전쟁 범죄였다는 것을 공식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협상대로라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며 일본정부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일본의 전쟁 범죄가 공식화 되지 않으면 일본은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에 이어 유엔 상임 이사국이 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시도를 할 것이다. 미국이 항상 찬성표를 던져왔음에도 만장일치의 규칙 때문에 일본은 그 동안 유엔 상임이사국이 될 수 없었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 할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전쟁 범죄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은 채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 국제 사회의 여론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었다.
지구촌을 전쟁터로 만들어 수많은 인류를 희생시킨 일본은 그 대가로 70년 동안 일명 평화헌법이라는 특수한 체제로 지내왔다.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이유는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전쟁을 위한 전력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냉전시대 공산국가에 대처하기위해 미일 동맹을 굳건히 한다는 미명아래 꾸준히 군사력을 키워 왔으며, 2015년 4월 미국과 일본의 방위 협력 지침 개정을 시작으로 마침내 지난 9월 19일 평화헌법을 무력화 시키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법제화시키는 안전보장관련법안(안보법안)을 참의원(상원)에서 최종 통과시킴으로써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되었다.
이미, 아베 총리는 “더 이상 사죄는 없다,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 고 말했다. 또한, 1월 1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발표문에 명기된 사죄와 반성의 문구를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라는 야당(민주당)의원의 요구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미 언급했다"며 거부했다. 아베 총리는 "양국 외교장관이 서로 회담했고, 내가 박 대통령에게도 (사죄) 말씀을 전했으니 그것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일축하고, 또한 “한국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 확신한다”며 “(한일 양국이) 불가역적인 합의를 실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속셈]
문제의 핵심은 미국이다. 미국은 날로 커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지만 국방비의 부담이 과도하고 이미 그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일본을 아시아 지역의 패권자로 만들어서 중국을 견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을 미국의 아시아 지사장쯤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중국과의 세계 패권 다툼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과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며 일본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고 일본의 무제한 군사 활동을 정당화하는 길이 열렸다.
그런데 턱밑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유사시 한반도에 일본의 군대가 상륙하거나 주둔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의 동맹 강화가 중요한데 해결되지 못한 한일간의 역사적 갈등이 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루빨리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해결되어 일본이 자유롭게 군사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목적을 위해 이번 위안부 합의가 강요됐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가 없다.
14살에 전쟁터로 끌려가 반복적으로 강간을 당하고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만 했던 이 땅의 딸들이 우리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역사이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상처이지만, 미국에게는 우리의 아픔 따위가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동맹도 우방도 모두 좋은 말이지만, 결국 미국도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제공동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로 한국은 최대 우방국인 미국으로부터 작년 한해 동안 9조원 어치의 무기를 구매해주었다. 세계 1위이다.
[우리, 미국]
우리는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조국의 불행과 고통을 결코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국의 불행이 미국에 의한 것으로 여겨 미국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면서 계속 미국땅에서 살아간다는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다양한 관점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옳은 목소리는 내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미국의 으름장에 놀란 한국정부가 국민들 몰래 일본정부와 억지로 악수를 나눈 이번 위안부 합의는 그 과정이나 내용이나 방식 모두가 결코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인권국가를 자처하며 북한과 중국 등 다른 나라의 인권 탄압을 비난해 온 미국이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당한 전쟁 범죄의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일 또는 그렇게 조장하는 일 또한 절대로 정의롭지 못한 일일 것이다.
미국은 미국답지 못했다. 한국정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역시 일본 정부답다.
미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에 다양한 형태의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전쟁 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외면하고 짓밟는다면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다 할지라도 결코 존경 받는 세계의 리더 국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미국다워야 한다.
Vol.54-0115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