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배달하던 레바논 출신 미국 이민자, 노벨상 영예
- 파타푸티언 박사 "레바논에선 과학자란 직업도 몰랐다"
- 야구선수 출신 물리학 교사에게 배우며 과학자 꿈꾼 줄리어스 교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뎀 파타푸티언(Ardem Patapoutian, 54) 스크립스연구소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 박사는 레바논 출신 미국인이다.
4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파타푸티언 박사는 아르메니아인의 후손으로 수십만명의 사망자를 내며 15년간 이어진 레바논 내전을 겪으며 자랐다.
그러다가 18세가 되던 1986년 형제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대학 입학 전에는 1년간 피자를 배달하고 아르메니아 신문에 점성술 기사를 기고하는 등 잡다한 일을 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에서 의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연구소에 들어간 그는 "기초연구와 사랑에 빠졌다"면서 "그게 내 직업의 항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파타푸티언 박사는 "레바논에서는 과학자란 직업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파타푸티언 박사는 신경계에 흥미를 갖게 됐지만 촉감과 통감(痛感) 연구에 더 끌리게 됐다고 말했다. 뇌 자체보다는 이런 감각 체계 연구가 더 쉬워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감각 신경세포가 압력이나 온도 같은 물리적 힘을 어떻게 알아채느냐 하는 문제는 잘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며 "잘 이해되지 않은 분야를 찾아내면 파고들기에 좋은 기회다"라고 말했다.
함께 상을 탄 데이비드 줄리어스(66)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UCSF) 교수는 자신이 태어난 뉴욕 브루클린 인근의 에이브러햄링컨고교 때 직업으로서의 과학자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학교에는 마이너리그 야구선수 출신의 물리학 교사가 있었는데 그가 야구공의 궤적을 계산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줄리어스 교수는 "그는 내게 '어쩌면 나는 과학을 해야 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해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과 컬럼비아대학에서 대학원,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면서 자연의 사물들이 인간 수용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줄리어스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생존에 고통보다 더 중요한 감각기관은 없는데도 이보다 더 부실하게 알려진 분야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줄리어스 교수의 연구실은 타란툴라 독거미와 독사인 산호뱀의 독소, 고추의 캡사이신, 서양 고추냉이와 와사비의 톡 쏘는 화학성분 등 자연계의 다양한 물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두 과학자는 서로 독립적으로 연구했지만 그들의 연구 분야는 상당 부분 겹치는 것이기도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파타푸티언 박사는 "우리가 둘 다 온도 감각을 연구하던 초기에는 우리 사이에 건전한 경쟁이 있었다"며 "위대한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며 경쟁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며 데이비드는 틀림없이 그런 과학자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편 수상자가 발표 시간이 수상자들이 사는 곳에선 새벽 2시 반이었기 때문에 노벨위원회는 수상 소식을 사전 통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파타푸티언 박사에게 수상 소식을 알려준 사람은 94세인 아버지였다. 파타푸티언 박사의 전화기가 밤새 '방해금지' 모드로 설정돼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러자 노벨위원회가 아버지에게 연락했기 때문이다.
줄리어스 교수 역시 처제에게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다. 노벨위원회가 줄리어스 교수의 연락처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