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현명한 부모
현명한 부모
자녀교육에 관한 우리 한인 가정들의 열정은 다른 어떤 민족들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녀교육의 최종 목적지가 명문대학 혹은 명문 의대 입학으로 잘못 설정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는 의대 진학 멘토의 입장에서 아직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과 함께 현명한 부모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인성함양이라는 말을 하면 너무 식상하게 다가갈지 모르므로 아주 현실적이고 관심이 갈만한 표현으로 접근해 보자. 성적이 안 좋은 학생도 의대에 진학할 수 있지만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대학졸업 학점이 2.7(4.0만점)이었던 학생도 함께 필자를 찾아온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의대 진학을 포기하지 말라고 권해서 2년을 더 준비시켜 의대에 진학시킨 일이 있고, 반대로 컬럼비아대학을 4.0으로 졸업하고도 단 한군데의 의대에도 합격하지 못해 필자를 찾아온 학생이 그의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뭐 하려고 환자들에게 시달리는 고생스러운 직업을 택하려고 하냐면서 다른 진로, 특히 가능하면 사람을 접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하기를 권했었다.
하지만 그 학생이 의대에 꼭 진학하고 싶다고 해서 스타벅스에서 일 년간 일하고서 다시 필자를 찾아오면 그 때에 의대 진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고, 실제로 스타벅스에서 열심히 일하며 세상을 조금이 나마 배운 다음, 다시 찾아온 그 학생을 지도해서 본인이 원하는 명문 의대에 진학시킨 일도 있다. 이와 유사한 일은 매년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짧은 시간에 해결 되었지만 먼 길을 돌아오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의대 진학에 실패한 유펜 GPA 4.0 졸업생에게 스타벅스 근무를 권했더니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5년 후에 다시 찾아온 그 부모에게서 삼수 끝에 결국 의대 진학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5년만에 다시 만난 그 학생은 불쌍한 백수 정도가 아니라 영혼이 황폐해져 있기까지 했으므로 일단 평화봉사단에 가입해 27개월의 해외봉사를 권했고, 그 후 약 3년 후에 다시 만난 그 학생은 웃으며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고 필자를 찾아 왔으며 그 해에 지원한 모든 의대에 합격했다.
더 기쁜 소식은 현재 재학 중인 의대에서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학생이고, 대학 4년간 부모에게 먼저 전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가 거의 매주 문안 전화를 한다며 부모가 감사의 인사를 전해 온 것이다.
다른 많은 분야도 인간이 인간을 대하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은 세포를 이해하는 능력은 기본이며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추가로 요구되는 전문 분야이다. 이 점이 많은 학생들이 과학은 잘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의대 진학에 실패하는 이유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을 보여 주는 간단한 기준은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잘 하며 살아왔느냐는 점이다. 간단하게 보면 각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소통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겠고, 또 소속된 집단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 가늠해 볼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현명한 부모란 자녀의 심리상태에 적합한 소통능력을 가진 부모를 의미한다. 기분이 좋은 상태와 잔뜩 심술이 나 있는 상태에 각기 다른 접근을 통해 이해와 소통을 할 수 있는 부모를 만난 자녀라면 그 또한 인간간의 소통의 기본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가 안 통하는 학생이 친구가 많을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대화가 안 통하는 학생이 설득력 있는 글을 쓸 확률도 낮을진대 더욱이 인터뷰에서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줄 확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입시에서만 글과 인터뷰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파트타임 잡을 위해서도, 구글에 취직하기 위해서도, 국무부에 취직하기 위해서도, 나중에 의사로서 병원에 취업하기 위해서도, 아니 개업한 의사로서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인간간의 소통은 기본이고 핵심이다. 여기에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이 얹혀져야 하는 것이다.
여름방학이면 바쁘게 섬머캠프에 가고 봉사에 참여하며 학습능력 함양에 시간을 쪼깨어 쓰다 보면 정작 가족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렵다는 가정의 모습은, 현재 50대 이상 부모들의 전유물이 되어 “그 땐 그랬지”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나 접할 수 있는 과거의 우스운 현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 많이 들여 유럽여행을 가는 것만 좋다는 것이 아니라, 단 하루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끼리 텐트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다. 문제는 부모와 자녀간에 웃으며 대화하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공통의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통해 소통의 문을 열어 두고자 하는 노력이다.
가족 간에도 소통이 안 되는 자녀가 밖에 나가서 모든 이들에게 환영 받는 사회인이 될 것 이라고 믿는 부모가 있다면 현명한 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현명한 부모들의 역할에 10년후 한인학생들의 의대 진학 성공률이 달려있고, 더 나아가 한인 출신 미국 대통령이 나올 시기가 달려있지 않겠는가?
남경윤 - 의대진학전문멘토
kynamEducati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