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 ‘버니 샌더스’ 돌풍 (1)
Feel the Bern!
- 공립 초중고 및 대학교 무상교육 공약
지난 2월 2일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한 기사는 아이오와 주에서 시작된 미국 대통령 후보의 경선 소식이었다. 4년 전 보다 5배나 많은 2천만 명 이상의 미국 국민이 이 경선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극단적 보수주의자로 거침없는 독설과 막말을 쏟아냄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보여왔던 공화당의 도널트 트럼프가 인기만큼의 많은 표를 얻어낼 것인지, 또한 민주당이 밀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첫 번째 성적표는 과연 어떨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전국을 돌며 실시되는 대통령 후보 경선 레이스의 첫 출발점인 2월 1일 아이오와 코커스(Caucus, 당원만 참여하여 대의원을 뽑는 행사)의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가 24.3%로 공화당에서 2등을 했고, 쿠바 이민자의 아들인 테드 크루즈가 27.6%를 얻어 1등을 차지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여론조사 결과만큼 높은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오와 주가 보수, 기독교인이 많은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에선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49.9%로 1등을 차지하긴 했으나 버니 샌더스 의원이 클린턴 전 장관에 겨우 0.3% 포인트 뒤진 49.6%의 표를 얻어냈다. 두 사람은 민주당의 아이오와 대의원 44명 가운데 각각 23명과 21명을 확보하게 됐다. 언론에서는 ‘사실상 무승부’라는 표현을 썼고 압승을 기대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에서 힐러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버니 샌더스는 전국적인 지명도가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여왕과 시골 군수의 대결로 비유할 수 있다.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조직을 이용할 수 있는 힐러리는 빌러리(Billary)라는 별명까지 얻기도 했지만, 버니 샌더스는 온전히 자원봉사자와 지지자들로만 조직을 꾸려나가고 있다.
또한, 힐러리는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티지, CNN, 뉴욕타임스등 모든 주류 언론의 지지를 받고 월가(街)와 대기업, 각종 이익 단체들로 구성된 수퍼팩(Super PAC)의 무제한 정치자금 지원을 받고 있지만, 버니 샌더스는 오직 소액 정치 헌금과 자원봉사에 의존하여 선거를 치르고 있다.
샌더스는 수퍼팩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통령이 되면 수퍼팩을 없애겠다는 공약까지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4분기 힐러리와 샌더스의 기부금은 고작 4백만 달러(45억 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모두를 놀라게 했으며, 샌더스는 2016년 1월 한달 동안 2천만 달러를 모금했다. 모두가 온라인으로 평균 27달러를 기부한 소액 기부자들이었다.
힐러리는 풍부한 정치자금으로 샌더스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광고를 여러 차례 낸 반면, 샌더스를 지지하는 자원봉사자들은 대선 사상 처음으로 35개 도시에서 샌더스를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벌였다.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로 설명되는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힐러리는 과연 수퍼팩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수퍼팩(Super PAC)이란?
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의 약자로 노동조합이나 기업, 단체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후보에게 무제한의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있는 ‘수퍼정치행동위원회’를 말한다. 힐러리에겐 월스트리트, 보험회사 등 미국의 엄청난 큰 손으로부터 돈이 쏟아져 들어갔고, 도널드 트럼프는 워낙 돈이 많아서 수퍼팩을 받지 않고 당당히 수퍼팩을 비난한다.
경선의 두 번째 관문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Primary)가 2월 9일에 열릴 예정이다. 프라이머리는 코커스와 달리 당원과 일반유권자가 모두 참여하는 경선방식이다. 뉴햄프셔 주에서 미리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버니 샌더스 의원은 63%의 지지율을 기록해 30%에 그친 클린턴 전 장관에 무려 33% 포인트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4월 버몬트 주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을 당시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은 60%대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고 버니 샌더스 의원은 지지율은 고작 4%대 였다. 버니 샌더스는 선거 캠페인 홈페이지에 “9개월 전 우리는 어떤 정치적 조직도, 정치자금도, 지명도도 없었지만, 지금은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조직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을 유세장으로 끌어내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기독교의 나라 미국에서 무신론자나 이슬람교 신자보다도 대통령이 될 확률이 낮다는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워싱턴 기성 정치인의 대명사인 힐러리 클린턴을 과연 꺾을 수 있을까? 만일,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미국 대통령 후보 역사상 몇 가지 기록을 세우게 된다고 한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 후보이자,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후보이며, 최초의 유대인 대통령 후보가 된다.
과연 그는 누구이고 돌풍의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는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있을까?
그는 공립 초중고와 대학교육을 유럽의 국가들처럼 무상으로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UC나, CSU를 모두 공짜로 다닌다는 말이다. 과연 그런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버니 샌더스에 대해서 알아보자.
<프로필>
이름: 버나드 버니 샌더스 (Bernard “Bernie” Sanders)
출생일: 1941년 09월 08일 (75세)
출생지: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
소속: 미국 버몬트주 상원의원
학력: 시카고 대학교
정당: 1971~1979-자유연합당, 1979~2015-무소속, 2015~현재-민주당
종교: 유대교(공식적)
<개요>
미국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칭하는 연방 상원의원이자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자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무소속으로 연방의원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다.
<생애>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페인트 판매상을 하던 폴란드 이민자 아버지와 유대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유대교식 교육을 받았고, 60년대 초반에는 키부츠(협동농장) 운동에도 몸담았다. 그의 외모나 특유의 브룩클린 억양도 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하버드에 진학을 원했으나 떨어지고 브루클린 칼리지 3학년 때 시카고 대학으로 편입했다. 이때부터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했는데, 교내 기숙사의 인종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1988년 제인 샌더스와 결혼했다. 제인은 남편의 정치 활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 입문>
버니 샌더스는 자칭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미국에선 낙인과도 같은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버니샌더스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평생 방 두 개짜리 월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46세의 나이에 사망했고 그때부터 버니 샌더스는 부의 재분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칼 마르크스 서적 등 사회주의, 공산주의 서적을 탐닉하기도 했는데 결정적으로 그가 정치에 뜻을 두게 된 계기는 '아돌프 히틀러' 때문이라고 한다. 유대인인 버니 샌더스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을 오는데 성공했지만 폴란드에 남은 부친의 다른 형제들은 모두 가스실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그의 가족력은 자연스럽게 그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잘못된 정치인이 선거에서 승리할 때 한 사회가 어떻게 파괴되는가를 보면서 정치라는 것은 정말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도구인 동시에, 인류를 스스로 멸종시킬 만큼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정치 경력>
1972년 버몬트주 연방상원의원 특별선거 낙선, 버\몬트 주지사 선거 낙선
1974년 버몬트주 연방상원의원 낙선
1976년 버몬트 주지사 선거 낙선
1981년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10표차 당선
1983년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재선
1985년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삼선
1986년 버몬트주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
1987년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4선
1988년 버몬트주 연방 하원 의원에 낙선
1990년 버몬트주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
1992~2004년까지 버몬트주 연방 하원 의원 8선
2006년 버몬트주 연방 상원 의원에 당선
2011년(70세) 부자감세 법안 통과를 비판하며 8시간 30분 동안 필리버스터(의사 진행 방해)
2012년 버몬트주 연방 상원 의원에 재선 (72% 득표)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
다음에 계속...
(denis@caledunews.com)
Vol.57-0205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