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리콘 밸리의 성공한 기업인 중에 인문학 전공자가 많은가?
왜 실리콘 밸리의 성공한 기업인 중에 인문학 전공자가 많은가?
- 비벡 와드와 (Vivek Wadhwa)
교육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는 많은 한인 학부모들은 자녀의 대학 전공으로 의학이나 공학 또는 과학을 선호한다. 자녀의 직업적 성공을 위해 의학과 이공계의 전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산업화가 한창이던 과거 한국의 상황에선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도 늘 비즈니스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과학이나 공학에 중점을 두도록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왔다. 미국이 제한된 교육 예산을 바로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주장에도 전적으로 동의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술이나 인문학보다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확인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예술과 인문학이 의학·공학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2008년 듀크대와 하버드대 연구팀은 502개의 기술 기업에서 일하는 미국 태생의 최고경영자와 제품엔지니어링 책임자 6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우리는 그들이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92%가 학사 학위를, 47%는 석사 학위 이상을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
그들의 세부 전공을 보면 37%만이 공학 및 컴퓨터 기술이었고, 수학 전공자는 2%뿐이었다. 나머지는 경영·회계·보건·예술·인문학 등 매우 다양한 전공의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학위가 기업가의 성공에 큰 변화를 가져 왔지만 그것이 있었던 분야와 그것이 시작된 학교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유튜브(YouTube)의 최고 경영자 수잔 워치츠키는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고, 메신저 개발 업체 슬랙(Slack)의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 필드는 철학 전공자였다. 세계 최대의 숙박 공유 기업 에어비앤비(Airbnb)의 설립자 브라이언 체스키는 순수 미술을 전공했고 링크드인(LinkedIn)의 창업자 리드 호프만은 철학 석사 학위 소지자이며, 중국 최대의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은 영어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대학 시절 수강했던 서체 수업이 매킨토시 컴퓨터의 개발 성공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아이패드 2의 공개행사에서 교양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애플의 DNA가 있습니다. 교양과 인문학이 기술과 결합하여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라는 말로 예술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잡스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을 만들었고, 기술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수립했다.
영문학을 전공한 컴퓨터 주변기기 제조 업체 로지텍의 CEO 브랙큰 대럴도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5년만에 회사의 주가를 450%나 올릴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회사가 만드는 모든 제품의 디자인에 끊임없이 주력하고 있습니다. 엔지니어링은 중요하지만 기술 관련 제품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좋은 디자인의 열쇠는 공감과 예술 및 인문학적 지식의 결합이다. 음악가와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창조성에 대한 가장 큰 감각을 가지고 있다. 아티스트에게 소프트웨어 및 그래픽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엔지니어를 예술가로 변모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지금은 '혁신의 규칙'을 바꾸는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중이다. 컴퓨터와 인공지능, 디지털 의술, 로봇공학, 합성생물학 등과 같은 광범위한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고 통합되면서 실로 놀라운 일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의학, 인공지능과 센서를 융합하면 인간의 건강을 진단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디지털 의사'를 만들 수 있다. 유전체학과 유전자 편집을 이용해 가뭄에 강하고 인류 전체를 먹여 살릴 새 식물을 개발할 수 있다. 인공지능 로봇을 사용해 노인들을 위한 디지털 컴패니언을 만들 수 있으며, 나노 물질의 발전은 모든 사람이 에너지를 저렴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태양광 저장 기술'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물학, 교육, 의료, 인간 행동과 같은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사회적·기술적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다양한 배경과 맥락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가장 잘 훈련 받을 수 있는 분야이다.
공학 학위는 매우 중요하지만 음악, 예술, 문학 및 심리학에서 비롯한 공감(共感)의 능력은 디자인 측면에서 큰 이점을 제공한다. 로마 제국의 계몽주의와 흥망성쇠를 연구한 역사학도는 기술의 인간적 요소와 유용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심리학 전공자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술 분야에서만 일한 엔지니어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3D로 인쇄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음악가 또는 예술가는 그 세계에서 왕이 될 것이다.
부모님들이 자녀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과학·공학 및 기술 분야로 그들을 안내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답한다. 그들에게 부모님이 한 일을 하게 하고,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공부를 ‘억지로 해야하는 따분한 일’로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대신에, 자녀들이 자신의 열정을 추구하고 배우는 것을 즐기고 좋아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기술을 통해 놀라운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와 함께 일하는 음악가와 예술가가 필요하다. 이것은 둘 중의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인문학과 공학이 모두 필요하다. 이제는 과학이나 공학, 의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인문학에도 관심을 쏟아야만 한다.
비벡 와드와 (Vivek Wadhwa)
미래학자이자 미국의 IT 구루(Guru)라고 불리는 비벡 와드와는 카네기 멜론 대학교 공학과의 특별 연구원이자 석좌교수이며 듀크대의 기업가 정신 및 연구 상업화 센터의 연구 책임자이다.
2008년 구글과 나사의 후원으로 실리콘밸리에 세워진 세계적 창업가 육성 기관이자 싱크탱크인 싱귤래리티대학교의 교수로 세상을 바꿀 첨단 기술을 연구하고, 산업 혁신, 사업가 정신, 공공 정책 등을 가르친다. 급격히 발전하는 신기술에 관한 정책과 법률, 도덕적 사안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인재를 양성하는 한편으로, 여러 국가의 정부에 조언하고 『워싱턴 포스트』, 『벤처비트』,『허핑턴포스트』, 미국 공학교육학회의 잡지 『프리즘』, 링크드인의 인플루언서스 블로그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2년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세계 100대 사상가’에 선정됐으며, 2013년에는 『타임스』가 선정한 ‘첨단 기술 분야의 영향력 있는 40인’ 명단에 포함됐다. 2015년에는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본보기로 삼을 만한 10대 인물’ 중 2위에 올랐다.
저서로는 『이코노미스트』가 ‘2012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민자 엑소더스(The Immigrant Exodus)』, 여성 첨단 기술 종사자들의 힘겨운 노력과 승리를 다룬 『혁신하는 여성들(Innovating Women)』등이 있으며, 지난해 출간한 『선택 가능한 미래(Driver In Driverless Car: How Our Technology Choice Will Create the Future)』가 파이낸셜 타임스&맥킨지 선정 ‘2017 올해의 경제경영서’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