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th Oscars, 오스카를 비춘 달빛
돌비 극장 무대의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PwC의 회계사 마사 루이즈(Martha Ruiz)와 브라이언 컬리넌(Brian Culinan)이 서있었다. 그들은 시상자에게 봉투를 전달하는 중책을 맡았다. 두 사람은 서류가방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수상작이 쓰인 똑 같은 24개의 봉투가 들어있었다. 시상자는 무대 뒤편에서 봉투를 전달 받고, 무대로 나간다.
여우주연상 시상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맡았다. 디캐프리오는 무대 왼편으로 입장했고, 루이즈가 그에게 봉투를 전달했다. 이 때 여우주연상 수상 결과가 내용인 담긴, 또 하나의 봉투가 열리지 않은 채 무대 오른편에 남겨졌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엠마 스톤이 오스카를 손에 들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왔다.
브라이언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작품상 시상이 이어졌다.
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영화 '보니와 클라이드' 50주년을 맞아 아카데미 요청을 받고 작품상 시상을 위해 무대의 오른편으로 입장했다. 이 때 컬리넌이 두 사람에게 전에 남겨진 봉투를 건넸다.
무대에 선 워렌 비티는 봉투를 열어 확인한 뒤 잠시 뜸을 들이다 이를 페이 더너웨이에게 보여줬다. 페이 더너웨이는 워렌을 쥐어 박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라라랜드'라고 호명했다. 돌비 극장은 환호로 가득찼다.
바로 그 시간 백스테이지는 극도의 혼란 상태가 되었다. 페이 더너웨이가 작품상으로 '라라랜드' 를 호명하자 무대 총괄 매니저는 헤드셋을 통해 "안 돼, 작품상은 '문라이트'야!"라고 소리쳤다. 주변에선 연신 "오 마이 갓" 이라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라라랜드' 제작진의 수락 연설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라라랜드의 프로듀서 조던 호로위츠가 제일 먼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트로피와 시상 봉투를 건네받고 소감을 말하는 동안 아카데미 측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급기야 헤드셋을 쓴 스태프 한명이 무대로 올라와 이리저리 움직였다.
소감 발언을 마친 호로위츠에게 스태프는 봉투를 보자고 했다. 그 종이엔 '엠마 스톤, 라라랜드'라고 적혀 있었다.
진행 요원은 무대 위에서 진짜를 찾아 나섰고, 담당자로부터 개봉되지 않은 작품상 봉투를 건네받았다.
호로위츠는 즉각 마이크 앞에 서서 "작품상은 '문라이트'다"라고 정정 발표했다. 문라이트 제작진을 향해 농담이 아니라며 무대위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급기야는 워렌 비티 손에 있던 진짜 작품상 결과 카드를 낚아채 카메라를 향해 들어 보이며 확인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아카데미 봉투게이트(Envelopegate)” 사건을 재구성해 보았다.
시상식 직후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는 발표자에게 봉투를 잘못 전달해 수상작이 뒤바뀌었다며 공식으로 사과했다. 진행을 맡았던 지미 키멜(Jimmy Kimmel)의 말대로 엔딩만 빼면 즐겁고 완벽한 무대였다.
오스카란
2017년 2월 26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the Academy Awards)이 거행되었다.
오스카로 불리기도하는 아카데미의 정식 명칭은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상’이다.
전년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봉해 일주일 이상 상영된 미국 영화와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를 대상으로 아카데미협회가 수상자를 선정하여 매년 봄에 시상한다.
1927년 M-G-M studio 의 루이스 메이어 ( Louis B. Mayer)가 제안해서 설립된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협회는 영화 산업에 도움을 준다는 취지로 1929년 5월 16일 루즈벨트 호텔에서 첫 번째 아카데미상 시상을 시작했다.
아카데미상 트로피가 오스카라는 별칭을 얻은 데는 크게 세 가지 설이 전해진다.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협회(AMPAS) 도서관 사서였다가 훗날 고위직까지 오른 마거릿 헤릭 여사가 1931년 초보 사서 시절 도서관 책상 위에 있는 황금상을 보고 자신의 삼촌 오스카와 닮았다고 말한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또 1920년대 할리우드 여배우 벳 데이비스가 트로피를 뒤에서 봤을 때 첫 남편 하먼 오스카 넬슨과 똑 닮아 오스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른 하나는1934년 할리우드의 한 칼럼니스트가 글을 쓰다가 아카데미상을 늘 '그 상'(The Statuette)이라고 표현하는데 싫증을 느껴 오스카라는 이름을 고안했다는 설도 있다.
오스카상이라는 칭호가 점차 범용적으로 쓰이자 아카데미 측은 1939년 이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아카데미상 시상식 담당 기업은 다국적 회계 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다. 오스카 시상식만 82년 동안 맡아 왔다. PwC는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 6,687명의 투표에 기반해 수상자를 선정해 왔다. 이번 아카데미상도 최다 득표한 후보가 수상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작품상 선정에는 선호 투표제를 적용했는데 투표자들이 작품마다 선호 순위를 매기고 이를 기반으로 수상작을 뽑았다.
오스카의 이모저모
ABC 방송 영화평론가인 피터 트래버스가 시상식 직전 올해가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대로 시상식은 시작부터 트럼프를 비판하거나 조롱하면서 진행되었다. 시상식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지미 키멀은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작년에 오스카상이 인종차별적으로 보였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게 올해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해에는 흑인 배우들이 배우 부문 후보에 단 한 명도 노미네이트되지 않아 '백인 잔치'라는 오명을 쓴 바 있다.
‘과대평가’ 메릴 스트립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그는 "한 여배우는 과대평가된 연기로 오랜 세월 건재하다. 그녀는 올해까지 20차례나 오스카상 후보로 지명됐다. 우리는 올해도 습관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고 말해 큰 웃음을 유도했다. 앞서 메릴 스트립이 ‘골든글로브 시상식’ 공로상 수상 소감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발언을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메릴 스트리립은) 과대평가된 배우”라고 맹비난한 것을 빗댄 발언이다.
또 여러 스타들이 파란 리본을 달고 포토월에 섰는데 파란 리본은 반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해 법정 투쟁을 불사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을 지지하는 상징이다. ACLU는 1920년 창설된 미국의 대표적인 민권 단체로, 도널드 트럼프 정권에 저항하는 의미로 ‘ACLU 약자가 새겨진 푸른 리본을 달자’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WSJ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세계 최고의 옷을 입은 자들의 트럼프 시위장이 됐다”고 전했다.
시상식에서는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지미 키멀은 무대 위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트위터 멘션을 썼으며, 헐리웃 관광객들이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미 키멀이 동양인의 이름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 시상식에는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15년 말 “나는 아마존이 오스카에서 수상하기를 원한다(I want Amazon to win an Oscar)”라고 포부를 밝혔던 제프 베조스의 꿈이 만 1년여 만에 이뤄진 것이다. 아마존이 투자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는데 그중 각본상(케네스 로너건)과 남우주연상(케이시 애플렉)을 받았다.
아마존의 또 다른 영화 ‘세일즈맨’도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아마존은 영화업계에 발을 내딘 2012년 이후 빠르게 주류 영화계로 진입했다.
수상작
오스카상의 가장 큰 상인 '빅 5'는 작품, 감독, 남우주연, 여우주연, 각본상을 말하고, '그랜드슬램'은 각본을 뺀 나머지 네 개 상을 수상한 작품을 뜻한다.
총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던 '라라랜드'는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비롯해 미술상·촬영상·음악상·주제가상까지 6관왕을 거머 쥐었으며 작품상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되었다.
다미엔 차젤레는 역대 최연소 감독상 주인공이 됐다.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 감독은 흑인 감독으로는 아카데미 시상식 사상 역대 두 번째 작품상을 받게 된 흑인 감독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88년간 '백인 잔치'로 불렸던 아카데미 시상식의 변화였다. 특히 지난해 영화인들로부터 '#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를 달게 했던 오명을 완벽히 씻어낼 수 있었다.
오스카 직전까지 165관왕을 기록한 '문라이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조연상·각색상까지 3관왕을 추가, 168관왕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남녀주연상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애플렉과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 차지했다. 남녀조연상은 흑인 배우 '문라이트'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와 '펜스' 비올라 데이비스가 수상했다. 외국어 영화상은 이란의 '세일즈 맨',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은 이변 없이 디즈니 '주토피아'에 돌아갔다.
이번 오스카에는 무대에 오르지 않은 주인공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제작자 브래드 피트다. 브래드 피트가 공동 대표로 있는 플랜B 엔터테인먼트가 ‘문라이트’ 제작에 함께 했기 때문이다. 브래드 피트는 총괄 프로듀서로 ‘문라이트’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브래드 피트의 플랜B 엔터테인먼트는 ‘문라이트’로 작품상을 추가하면서 벌써 세 번째 작품상 트로피를 품에 안게 됐다.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디파티드(The Departed)’는 당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작품상 외에도 감독상과 편집상, 각색상 등 주요 부문을 모두 싹쓸이하기도 했다. 이후 ‘노예 12년’으로 다시 한 번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반전 엔딩이 있었던 올해의 오스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를 것 같다.
<수상자 명단>
Best Picture: “Moonlight.”
Actor: Casey Affleck, “Manchester by the Sea.”
Actress: Emma Stone, “La La Land.”
Directing: Damien Chazelle, “La La Land.”
Supporting Actor: Mahershala Ali, “Moonlight.”
Supporting Actress: Viola Davis, “Fences.”
Foreign Language Film: “The Salesman,” Iran.
Adapted Screenplay: “Moonlight,” screenplay by Barry Jenkins, story by Tarell Alvin McCraney.
Original Screenplay: Kenneth Lonergan, “Manchester by the Sea.”
Production Design: “La La Land,” Production Design: David Wasco; Set Decoration: Sandy Reynolds-Wasco.
Cinematography: Linus Sandgren, “La La Land.”
Sound Mixing: “Hacksaw Ridge,” Kevin O’Connell, Andy Wright, Robert Mackenzie and Peter Grace.
Sound Editing: “Arrival,” Sylvain Bellemare.
Original Score: “La La Land,” Justin Hurwitz.
Original Song: “City of Stars” from “La La Land,” music by Justin Hurwitz, lyric by Ben Pasek and Justin Paul.
Costume Design: Colleen Atwood, “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
Documentary (short subject): “The White Helmets,” Orlando von Einsiedel and Joanna Natasegara.
Documentary Feature: “O.J.: Made in America,” Ezra Edelman and Caroline Waterlow.
Film Editing: “Hacksaw Ridge,” John Gilbert.
Makeup and Hairstyling: “Suicide Squad,” Alessandro Bertolazzi, Giorgio Gregorini and Christopher Nelson.
Animated Feature Film: “Zootopia,” Byron Howard, Rich Moore and Clark Spencer.
Animated Short Film: “Piper,” Alan Barillaro and Marc Sondheimer.
Live Action Short Film: “Sing,” Kristof Deak and Anna Udvardy.
Visual Effects: “The Jungle Book,” Robert Legato, Adam Valdez, Andrew R. Jones and Dan Lem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