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니힐스 하이스쿨 한국어 교사 - 이 에스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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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힐스 하이스쿨 한국어 교사 - 이 에스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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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힐스 하이스쿨 한국어 교사 - 이 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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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erton Joint Union High School District 에 소속된 서니힐스 하이스쿨은 
한인 학생의 비율이 40%가 넘는 학교로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는 한인들 사이에 매우 잘 알려져 있는 학교이다.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 에스더 선생님을 만났다.

 

◇ 서니힐스 하이스쿨에서 근무 하신지 얼마나 되셨는지요?

 

15년됐습니다. 이제 16년째네요. 

 

◇ 그전에는 어디서 근무를 하셨나요?

 

처음엔 Sunset Lane Elementary School에서 영어(ESL)를 가르쳤어요. 
그 다음엔 또 Parks Junior High School에서 5년 동안 ESL 교사로 근무했죠. 
그리고는 여기 서니힐스로 와서 20명의 ESL 클래스를 맡게 되었죠.

 

◇ 영어 선생님이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한국어 클래스를 맡게 되셨는지요?

 

이야기를 하자면 참 긴 이야기인데(웃음) 간단히 말씀드려 보자면, 사실 저는 전공이 성악이었어요. 

San Diego State University 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사립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를 했었죠.
그러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Fullerton으로 오게 되었는데, 처음엔 자리가 없어서 음악교사(K -12)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Elementary School에서 ESL 보조 교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전공이 성악이다 보니까 영어를 가르치면서 노래를 많이 활용하게 되더라구요. Adult School 에서 성인들에게 영어 발음을 가르칠 때에도 전공이 많이 도움이 되었구요. 그래서 반응이 꽤 괜찮았어요.(웃음) 

 

그러던 중 1997년에 한국어 진흥 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SAT II 시험과목으로 한국어가 정식으로 채택되게 되어 한국어 교사를 모집하려고 하는데 CSET(한국어 교사 자격증 시험)에 응시해 보지않겠느냐, 그래서 파일럿 테스트로 제가 첫 번째 합격자가 되었죠. 제 크리덴셜에는 음악교사& 한국어 교사라고 나오게 되었구요. 

 

제가 ESL 클래스에서 영어로 노래를 가르치고 크리스마스에 소방서에 가서 캐롤을 불러주는 봉사도 했는데 그런 활동들이 학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았던 것 같아요. 1999년에 서니 힐스에서 Korean Class 한 반을 맡아보라고 하더군요, 그 다음해엔 한국어 반 5개를 전부 맡게 되었죠.

 

정식으로 한국어 교사 자격을 가진 분들이 미국엔 약 80명 정도 있고, 그 분들이 모인 ‘미주 초중고 한국어교사협의회’라는 것이었는데, 그 협의회의 회장직을 2년간 맡기도 했어요. 강의도 많이 하고 참 열심히 활동을 했었죠. 그 때는 중고등학교 교사들만 있었는데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도 포함되었다고 해요.

 

◇ 한국어클래스는 대부분 한인 학생들이겠지요?

 

네. 그렇죠. 하지만, 점점 외국(타인종)학생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한류의 영향도 있고, 한국어 클래스가 단지 언어만 가르치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또 한인 2세 학생들 중에도 한국어를 전혀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어 기초를 가르치면서, 한국 노래도 가르치고, 인성교육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 인성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계시는지요?

 

거짓말 하지 말고 정직 하여라, 숙제를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서 해라. 숙제로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해봐라. 한국 사람이 여기서 날라리로 살면 안 된다. (웃음) 뭐 이런 당연한 말들을 많이 하면서도 부모님을 공경하고, 예의범절을 잘 지키라는 등의 한국적인 정서를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발렌타인데이에도 부모님께 카드를 쓰게 했어요. 물론 한글로요. 서툰 글씨 지만 정성껏 한자한자 쓰고 예쁘게 꾸민 아이들의 카드를 부모님들께서 받으시고는 많이 좋아하셨어요. 몇몇 분들은 답장을 써 주시기도 하셨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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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축제를 내주셨네요. 아무래도 2세들에게는 한국식의 예절이 낯설고 어렵겠지요? 

 

네, 아주 예의가 없는 애들도 많죠… 그런데 저는 멀리서도 인사를 시켜요. 인사를 대충하면 큰 소리로 ‘똑바로 다시!’하고 소리를 지르죠. 제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데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면 하루 종일 매 수업시간마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그래야 집에서도 엄마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달려가서 돕게 되니까요. 

 

한번은 어떤 아버님께서 전화를 하셨어요. 우리 애가 어떻게 된 거냐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 갔는데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더라는 거죠. 

제가 엑스트라 크레딧 주겠다고 하고 숙제를 내주었거든요.(웃음) 이번 설날을 맞아서는 올해가 양띠 해인데 엄마 아빠의 띠를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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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한국식으로 엄하게 하시면 애들이 싫어하지 않나요? 

 

엄하게 해도 다 사랑으로 한다는 것을 아니까 꼭 그렇지는 않아요. 보통 때는 아주 상냥하게 하니 까요(웃음). 오히려 좀 건들거리는 애들, 남들이 깡패 같다고 하는 애들이 내 말은 더 잘 들어요. 제가 잘 받아주거든요. 그 아이들도 철이 없어서 한 때 방황을 하는 건데, 그 아이들은 아무데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요.

내가 안 받아주면 어디서 받아주나 하고 받아줍니다. 그러면 애들이 갈 데가 없어서 방황을 하다가 나중엔 저를 찾아오죠.

 

◇ 힘든 일도 많으시겠지만 보람도 크시겠어요.

 

네, 물론이에요... ESL 클래스를 들었던 애들이 커서 저를 찾아오기도 했어요. 군인이 되어 찾아오고, 시민권을 따고 아이를 낳았다고 찾아온 히스패닉 아이도 있었고,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던 학생이 국제 변호사가 되었다고 찾아오고.. (웃음) 그럴 때 큰 보람을 느끼죠. 제 나이의 친구들은 슬슬 여행이 나 다니면서 편하게 지내는데 저는 이런 보람 때문에(웃음)

 

◇ 미국엔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되셨나요?

 

1976년에 American Samoa에 가족 이민으로 왔어요. 저의 아버지께서 원래 선급협회에서 선박 검사원 (Class Surveyor)으로 근무를 하셨었거든요,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셨구요. 그러다가 1955년에 미국 San Diego에 오신 적이 있으신데, 그 때 저희들을 미국에서 공부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나중에 San Diego에 오게 되었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죠. 그런데 1991년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음악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죠. 그리고 그 후에 이쪽으로 오고 나서는 Concordia University 에서 Instruction and curriculum mastering Education으로 석사를 했죠. 그 때는 참 많이 힘들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미소)

 

◇ 한인학생클럽의 고문(advisor)를 맡고 계시지요?

 

네, 저희 서니힐스 하이스쿨에는 한국문화클럽 (Korean Culture Club; 이하 KCC)이라고 하는 한인학생클럽이 있습니다. 제가 서포트를 하긴 하지만 모든 활동을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고있어요. 

 

◇ 클럽에 소속된 학생들은 몇 명이나 되고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요?

 

현재 약 100명 정도 되고요, 커뮤니티 봉사도 하고, 한국어 공부, 태권도, 사물놀이, Kpop 댄스 등을 함께하면서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를 주최도 하고 참여도 하고 있습니다.

 

1년에 큰 행사 두 개가 있는데요, 지난 2월 13일에 저희 학교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국제 음식 박람회 (lFF; International Food Fair)에 서 KCC 아이들이 공연을 했습니다. 사물놀이와 Kpop 댄스 공연, 태권도 시범을 보였는데, 정말 너무 잘했어요. 완전히 분위기를 장악했죠. 타인종 학생들도 공연을 하긴 했지만, 인원수나 내용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아요. (웃음) 두 번째 행사는 ‘한국문화의 밤’ 인데 오는 2월 21일 토요일 오후 6시 반에 저희 학교 소강당에서 열립니다. 마찬가지로 사물놀이와 태권도 시범 등의 공연도 열리고 한국어 클래스를 듣는 타인종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패션쇼도 하고, 한국 노래도 불러요. 꼭 보러오세요.

 

◇ 한인학생들이 많고 활동도 활발한데 학교측이나 타인종학생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거나 하지는 않나요?

 

사물놀이가 연습할 때 굉장히 시끄럽거든요. 그런데 그걸 이 교실 앞에서 합니다. 옆에서 얼마나 시끄럽겠어요. 그런데 다 참아줘요. 오랜 시간 크레딧을 쌓은 거죠. 추석 때 음식을 하면 거의 전교생에게 나눠 주고, 크리스마스에는 오피스에 가서 노래도 불러주고.. 여기 선생님들은 불고기와 김밥을 엄청 좋아해요. (웃음) 우리 학생들 절대 기죽지 말라는 거에요. 어쨌든 여기서는 우리가 마이너리티잖아요.

 

이번 행사 (IFF)때도 사실은 마찰이 좀 있었어요. 학교측에서 K-POP을 한국문화라고 볼 수 있느냐라는 일부 의견이 있었던 거였죠. 열심히 연습한 우리 아이들은 당연히 ‘왜 K-POP이 한국 문화가 아니냐 엄연한 한국문화다’라는 입장이고... 

 

태권도에 사물놀이에 원체 참가 인원도 많은데다가 K-POP 노래를 3곡이나 바꾸어가며 댄스 공연을 한다고 했으니까요.(웃음) 아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거다, 우리가 너무 잘하니까 그런 거다’ 하고 달래고, 학교측에 가서는 좋게 좋게 말하면서도 강하게 따져서 설득하고.. (웃음)

 

◇ 학생들이 참 든든하겠습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하시는지요?

 

우리 제자들이 한국어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어 교사로서의 애로점이나, 전망 등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으니까,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꼭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한국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또 우리 학생들 중에서 좋은 리더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의사가 되더라도 ‘선생님이 착한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 ’ 라는 기억이 남아서 진짜로 착한 의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미소)  

 

아이들이 방과후에 배가 고프다며 찾아오면 라면을 끓여 주기도 한다던 에스더 선생님은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내게, 차가 막힐 시간인데 가는 길에 먹으라며 초코파이 두 개를 손에 쥐어 주었다. 

한국어 선생님, 카운슬러, 엄마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에스더 이 선생님의 팔순 노모께서는 아직도 ‘가나 새가정 상담소’의 소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 상담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역시 콩심은 데 콩이 나는 것인가... 지금 서니힐스 하이스쿨에는 건강하고 예쁜 콩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데니스 한 기자

Vol.11-201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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