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 그리고 인류의 기원
네안데르탈인을 아세요?
미국과학진흥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에서 발간하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지는 2월에 발간된 Vol. 359의 표지로 스페인에 있는 동굴 벽면 사진을 실었다. 유심히 들여다 보면 붉은색으로 그려진 낙서가 보인다.
저널은 또한 2008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페인 북부 라 파시에가(La Pasiega) 동굴 벽화가 최소 6만 년 전에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는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게재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는 4만 년 전 그려진 스페인 북부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발견된 붉은 원반그림이다.
이 결과는 뜨거운 후속 논쟁을 불러왔다. 대체 동굴 벽에 오래전 그려진 그림에 무엇이 문제일까?
더크 호프만 교수 등 독일,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고고·물리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스페인 북부 라 파시에가(La Pasiega) 동굴 지대, 스페인 서부 말트라비에소(Maltravieso) 등에 그려진 동굴벽화를 우라늄 등 방사성 물질을 사용, 연대 측정(U-Th dating)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이들 동굴벽화 중 라 파시에가의 벽화가 약 6만 4800~8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했으며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에 의해 그려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안의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이 누구인가.
기억을 더듬어보면 학교 수업시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이어지는 인간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직계 조상은 아니고 약 3만 년 전 멸종한 인류의 사촌쯤으로 여겨지던 존재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 왔다. 1868년 스페인 북부에서 발견된 알타미라 동굴 벽화 등이 호모 사피엔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란의 바탕은 추상적인 인지능력과 연결되어 있다. UC 데이비스의 심리학자인 리처드 코스 교수가 네안데르탈인이 그림을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이색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네안데르탈인이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가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있던 많은 것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심지어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의 몸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UC버클리 레베카 칸 교수 연구팀은 1987년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해서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낸 것이 아니라 유럽과 중동에서 함께 살았으며, 짝짓기를 통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현생인류에까지 전달됐다고 주장한다. 이후 다수의 연구에서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비교분석한 결과 1~3%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쯤이면 내 안의 네안데르탈인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 그리고 인류의 기원
인류의 진화 과정에 흥미를 가질 즈음 노튼출판사(W.W. Norton & Company)에서 2월 말 출간한 ‘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런데 저자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Sang-Hee Lee.
이 책은 고인류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상희 박사가 친절하게도 진화나 고인류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다. ‘포브스’지는 이 책을 ‘2018년 초반에 기대할 만한 책(a book to look forward to in early 2018)’으로 선정했고, 네이처지는 ‘종종 지루하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 학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시도한 이상희 교수의 노력은 전문가들에게도 영감을 줄 것’ 이라고 했으며 아마존의 독자평에는 “인류학의 칼 세이건”이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한국에서 ‘인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을 이번에 제목을 바꿔 영문판으로 발간한 것이며 최근 타이완에서 인류의 기원 중문판번체자가 출간되었다.
사람들은 고인류학이 과거만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과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과거 속 인류는 낭만적인 상상 속에서만 존재해서 다른 행성의 외계 존재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이상희 교수는 우리 안의 고인류를 보여준다. 우유만 마시면 뻔질나게 화장실을 드나드는 이유도 요즘엔 육아과정에서 할머니의 존재가 커지는 현상도 진화로 설명이 된다.
우리는 인간 수명 100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후기 구석기 시대의 가족 구성을 유지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상희 박사를 UC 리버사이드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을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주 간단한 대답으로는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연재물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냈다.” 라고 답을 해드릴 수 있겠구요. 그 연재 자체가 이루어지게 된 계기가 또 있습니다.
2010년에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30억 개 유전자 정보의 전체가 해독되어 논문으로 발표가 되었었죠. 그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해서 ‘과학동아’의 윤신영 편집장(당시 기자)이 글을 한 편 썼어요. 글을 쓰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전문가를 찾다가 우연히 검색을 통해서 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답니다. 제가 2007년에 처음으로 한글로 논문을 쓴 게 있었는데, 인류 진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문이었어요. 검색을 하다가 그 논문을 발견을 한 것이죠. 그게 인연이 되어 제게 이메일로 연락을 주셨어요. 그후 조금씩 그 분의 글에 도움을 드리게 되었는데, 때마침 그 때 제가 온라인 신문에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보통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듯이 하는 글을 시작했었어요. 그래서 기자님께 그 이야기를 드렸는데 ‘마침, 인류의 기원에 대한 기획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잘 됐다’면서 그렇게 연재가 시작된거죠.
▶ 이번에 ‘인류의 기원’ 영문판을 출간하시게 되었는데 그 동기와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사실은 사이언스 북스 측에서 먼저 권유를 하셨어요. 좀 국제적으로 나가보자. 그래서 해외의 여러 출판사에 의향을 물어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때 그 출판사들에게 보낼 자료를 제가 준비를 하게 됐는데 세 꼭지 정도를 영문으로 번역을 해서 자료를 만들어 드렸어요. 그리고는 이제 미국에 있는 출판사도 섭외를 해야 하니까 제가 알고 있는 노튼 출판사에 연락을 했습니다. 솔직히 연락할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인류의 기원’을 좋아해 주셨지만,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많이 있을텐데 과연 출판을 하려고 할까하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예상외로 처음이자 유일하게 연락을 한 출판사에서 ‘오, 해보자’ 하고 연락이 온거에요. 그래서 얼떨결에 제가 출판에 개입을 하게 된겁니다.(웃음) 맨 처음에는 제가 이 책을 직접 번역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저작권을 파는 것이니까 번역이야 거기서 알아서 하겠지하고 생각했죠. 다른 할 일도 많고.. 그런데 노튼출판사 측에서 저에게 번역을 할 사람을 소개를 시켜주고 네가 번역문을 감수하는 조건으로 하자는 제안이 왔어요. 사실 감수나 편집은 밑도 끝도없이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 일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제 글을 다른 사람이 번역을 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미묘한 차이를 일일이 다 고쳐야 할 지도 모르고.. 앓느니 죽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 막상 다 해놓고 나면 시간은 시간대로, 공은 공대로 들이고도 별로 생색도 안나는 일일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가 그냥 할게” 그랬습니다.(웃음) 그랬더니 다들 놀라더군요.
그런데 처음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2017년 1년 동안 번역을 해서 11월 30일에 보냈거든요. 어쩌면 오히려 ‘인류의 기원’보다도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갔죠. ‘인류의 기원’은 2년 동안 연재를 했던 글이었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왕창 노력이 들어갈 일이 없었지만, 이 책은 정말 생으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오랫만에 밤 늦게까지 일도 많이 했습니다.(웃음)
▶ 한글판과 영문판에 차이가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한글판 책을 보면 시작할 때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사용한 부분이 몇 개가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알아보고 재미를 느낄 만한 부분들. 예를 들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라던가 ‘어머님 은혜’ 노래의 가사라던가. 그런데 이런 부분들을 영문책에서 그대로 사용하려면 ‘각주’를 달아야 하는 거잖아요. 모든 농담이나 우스개 소리가 그렇지만, 이게 왜 재미난지를 설명을 하면 이미 재미가 없는거 거든요. 게다가 본론도 아니고 재미있으려고 한 얘기들을 ‘각주’로 설명을 하기 위해 힘을 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들을 부드럽게 넘기느라고 영문판 편집자하고 많은 이메일이 오고 갔습니다. 거꾸로 영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없는 표현을 한국 독자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 경우에는 노튼출판사 측에서 ‘다 아는 얘긴데 뭘 이런걸 설명을 해?’ 그래서 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영문판 책 제목이 ‘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인데 무슨 의미인가요?
영어판도 그렇고 한국어판 제목도 그렇고 제가 개입을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먼저 내신 선배님들의 말씀을 들어봤더니 책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 등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해 줄테니까 괜히 의견내지 말아라. 그래서 그렇게 했거든요.(웃음) 그런데, 처음에는 ‘Close Encounters with Mankind’라고 왔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비슷한 영화 제목도 있고, 우연한 만남이라는 뜻인데 저는 단지 Mankind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편집자가 제 책을 읽고는 딱 떠오른 영감이라고 보내왔는데.. 한 20초 정도는 고민을 했어요. 왜냐하면 편집자들이 지어준 제목에 토달지 말라고 했으니까... 근데 정말 mankind는 마음에 안들었어요. 그래서 이메일을 보냈어요. 이 mankind를 Humankind로 해달라. 그랬더니 두 말 없이 바꿔줬어요. 그런데 마침, 이 책이 나올때쯤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Peoplekind라는 단어 때문에 약간 구설수에 올랐었거든요 (편집자주; 트뤼도 총리는 한 미팅에서 mankind라는 단어를 사용한 여성 시민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우리는 peoplekind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고 지적을 함. 청중들은 박수를 보냈지만, SNS에서는 총리의 행동을 여성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가리키는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며 비난함) 그래서 저는 제 책에 천운이 따르는구나 하고 페북에다 나는 Humankind라고 썼다고 열심히 자랑을 했습니다.(웃음)
▶ 최근 한글판 책의 표지가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는 글에만 신경을 쓰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십시오 하고, 하나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책을 딱 받아봤는데, 그림이 굉장히 강렬하고 좋았지만 대부분이 남자더라구요, 여자는 한 두세 컷 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하나는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 그런 식으로 어떻게 보면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만 나와 있었고, 나머지 도구를 만들고, 사냥을 하고, 농경을 하고, 그냥 걸어가고, 점차적으로 진화해 가는 인류의 모습을 그린 그림 조차도 모두 남자들 뿐이었어요. 이것을 보고, 좀 아닌데 싶었지만 일단 책이 나왔으니까, 또 이런 거는 토를 다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다 2016년 말에 영어판 표지 디자인을 시작했는데 이 삽화가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노튼측에 삽화는 다 빼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노튼측에서 “좋은데 왜 빼?” 그래서 제가 “너무 남자들만 많아” 그랬더니, “그럼 여자들을 그려줄 수 있겠어?” 라고 답이 오더라구요. 사실 그때 솔직히는 ‘아, 이거 조금 귀찮게 됐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사이언스북스 측에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오, 다시 그리죠’ 그렇게 나온 거에요. 그래서 사이언스 북스 측에서 화가를 섭외하고 추가 비용까지 다 부담을 해서 그림을 몇 개를 그렸는데 그 과정이 사실 순탄치는 않았어요. 화가가 고인류학자가 아니니까 뭔가 영감을 받을만한 이미지가 필요한데 떠도는 이미지들은 다 남성중심적인 이미지들뿐인 거에요. 아무튼 이메일도 많이 주고받고 해서 일련의 그림들이 나오게 됐죠. 그 컷들을 노튼측에 전달을 했는데 굉장히 좋아했어요. 특히, 그중에 사냥하는 모습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해서 영문판 표지의 제일 위에 나온 그림이 바로 그 사냥하는 모습의 그림입니다.
▶ 평소에도 페미니즘이나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나요?
그런 생각이 사실은 좀 최근에, 한 10년전부터? 더 많이 하게 됐어요. 그 전까지는 그냥 무시를 하고, 저도 시대의 산물이니까(웃음) 어떻게 보면 평생 동안 ‘사람은 남녀를 따지기 보다는 인간이 먼저다. 우리는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학생으로서, 전문가로서, 교수로서 살아가는 것이지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라는 훈련을 받았죠. 그런데 이제 그 훈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예요. 결국은 우리가 말하는 사람, 전문가, 학자라는 것은 성별을 배제한 중성적인 개념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여성성을 배제한다는 것 자체가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뒤늦게 페미니즘 수업을 몇 개 들었습니다. 교수가 되니까 좋은 게 청강을 하고 싶을 때 그게 가능한 거에요. 그리고 고고학계에서 젠더와 고고학 쪽으로 굉장히 유명한 교수가 저희 학과에 계셨어요. 지금은 은퇴를 하셨는데, 그 분이 은퇴를 하시기 전에 한 5년 동안 그 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조금씩 생각을 바꿔나가게 되었고, 그렇게해서 조금씩 눈이 뜨이기 시작하니까 옛날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사실 그 책을 보고 “어? 왜 전부 다 남자들 뿐이야?” 라는 것도 그 전에는 그냥 넘어 갔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번 딱 보이기 시작하니까 보이는 거에요.
▶ 갑자기 궁금해졌는데요, 발굴된 화석들은 성비가 어떤가요? 거의 비슷한가요?
재미있는 질문을 하셨는데요, 사실은 네안데르탈인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남자입니다.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 왜 여자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몇 점이 없지”라고 많이들 얘기를 해요.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죠. 남자들만 우선적으로 묻어 줬거나, 아니면 여자들이 더 오래 살았거나. 늙어서 죽은 사람들 중에 여자들이 많으면 화석화가 덜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화석을 보고 남자, 여자라고 구분하는 것은 뼈의 특징을 보고 구분을 하는 것이거든요. 골반 이외에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집단별로도 달라요. 예들 들면 동북 아시아의 경우에는 남자들의 인골이 서유럽 계통 남자들의 인골보다 더 부드러워요. (덜 우락부락해요.) 어떤 집단의 여자들은 다른 어떤 집단의 남자들보다 더 우락부락할 수도 있거든요. 네안데르탈인 같은 경우에는 여태까지 발견된 골반이 몇 개 안 됩니다. 나머지는 다 두개골에서 나온 우락부락성(?)을 가지고 성별을 판별 혹은 추정을 하는 건데, 남자들이 많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우락부락한 것들을 다 남자라고 의례 간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살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제가 궁리를 하고 있는 논문 주제중의 하나예요.
▶ 네안데르탈인이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네안데르탈인은 우리가 현생 인류라고 전통적으로 생각했던 3만 년 이후의 인류 바로 이전의 인류로 남아있는 유일한 인류였어요, 시기상으로요. 그렇기 때문에 중기 구석기의 네안데르탈인과 바로 다음의 후기 구석기의 현생 인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가 가장 큰 궁금증이었죠. 그 관계라는 것은 사실은 성관계죠.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없느냐, 같은 종이냐 아니냐가 가장 큰 화두였죠. 또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에서만 나타났는데 현재 고고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유럽인이거나 유럽계 미국인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조상이나 기원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중요할 수 있죠.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그 시점에 분명히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이 살았을 텐데 화석이 없는 거에요. 3만 년 전후로 유럽에서만 유일하게 현생 인류 직전의 사람들의 흔적이 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에는 없는 거예요. 정말 살지 않아서 없는 것인지, 아니면 화석이 안되어서 없는 건지, 혹은 발견이 안되었을뿐인 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데니소바인이 나타남으로 해서 적어도 그 당시에 다른곳에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구나. 현생인류 직전에 살고 있던 것이 네안데르탈인이 유일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게놈을 분석해 봤더니 현생 인류와 다 섞였다는 것이죠.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현생 인류가 다 그 지역에서 살았었다는 거예요.
▶ 교수님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가 “한국의 1호 고인류박사”인데요, 고인류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고인류학은 조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화석을 통해서 인류의 조상들이 어디서 왔고, 그 이전 조상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사실은 굉장히 재미없고 건조한 학문이예요. 그런데 그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는 학문 그자체 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거든요. 저는 바로 그 부분이 고인류학과 일반 사회가 만날 수 있는 공통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더 중요하고요.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조상들의 삶. 그것을 공통으로 고인류학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가 있어요.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고인류학 학문 자체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 이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마 제 책을 읽고 다른 준비없이 고인류학 연구 논문을 읽으시려고 한다면 많이 힘드실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 속에는 우리의 과거가 현재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도 마찬가지거든요. 제 부모님과 제 조부모님들의 삶이 지금 저의 삶에 있는 것처럼,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삶에는 이 이전의 종들의 삶이 들어가 있는겁니다.
▶ 어떻게 해서 “한국의 1호 고인류박사”가 되신건가요?
저는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삽질도 많이하고 땅을 많이 팠었는데(웃음), 대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습니다. 당시, 한국고등교육재단이라는 곳에서 장학금을 줬어요. 아직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 어떤 공부를 할까 고민을 하는데, 그 당시 저를 많이 아껴 주시고, 제가 많이 따르던 서울대학교 이선복 선생님께서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학문이 고인류학이니까, 너는 가서 고인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의 학문발전에 보탬이 되거라.”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 말씀을 듣고 아, 그래 그렇게 필요한 공부를 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현재 UC 리버사이드에서는 학생들에게 어떤 과목을 가르치고 계시죠?
인류학과 교수로 있으니까 인류학과 과목을 가르치는데 지금은 보직(사회과학대 부학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사실 수업은 거의 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워요.
▶ 책을 보면 최근 눈부시게 발전한 유전학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요. 앞으로 고인류학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요?
저는 화석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전자가 알려주는 것은 기원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몸이거든요. 당신에게 이러이러한 유전자가 있더라 하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정보죠. 하지만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환경과 반응을 하고 살아가고 아이를 낳는 몸은 유전자 플러스 환경입니다. 형질이죠. 그 화석은 바로 그런 직접적인 창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유전자는 배후이고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화석을 배제하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됐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게 해 주는 겁니다.
▶ 고고학이나 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호기심, 상상력 그리고 죄송합니다. 국영수입니다. 기본적으로 과학을 하는 자세, 과학을 할 수 있는 기본틀, 그래서 수학이 너무너무 중요하고요. 수포자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 절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제가 절망을 느낄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학생들이 왔는데, 공부를 하고 싶어하고 재미있어 하는데, 운신의 폭이 너무 좁은거에요. 초중고에서 했었어야 하는 기초 공부를 안 하고 왔기 때문에.. 그래서 앞으로의 미래는 대학원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교사들과 같이 보조를 맞추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해요.
▶ 책은 읽는 사람뿐만 아니라, 쓰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텐데요, 이번 한글판과 영문판 ‘인류의 기원’을 쓰시면서 교수님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것일까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여성과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막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관련된 논문도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 다음에는 어떤 책을 쓰실지 기대가 됩니다. 혹시 계획이 있으신가요?
‘인류의 기원’에서도 나왔던 유적이랄지 곳곳을 제가 다니면서 느꼈던 것을 담은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고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보였던 혹은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모습,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기원’을 조금 더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삽화 위주의 ‘인류의 기원’이 올 상반기에 나올 예정입니다.
‘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 그리고 인류의 기원, 이상희박사,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