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노벨상 수상에 대해 답하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지난 28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드디어 상을 수락했다.
AFP 통신등은 딜런이 스웨덴한림원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노벨문학상 수락 여부를 묻자 "상을 받을 거냐고요? 당연하죠"라고 답했으며 "영광스러운 상에 정말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딜런은 지난 13일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한림원의 전화를 받지 않고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아서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은 딜런과의 연락을 포기했다며 "딜런과 가장 가까운 공동 제작자에게 전화와 이메일로 연락해 친절한 답변을 받았고 현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한림원과 언론의 연락을 피하고 침묵으로 일관한 딜런을 행동을 두고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회원인 페르 베스트베리는 "무례하고 건방지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는데 수상 발표 후 딜런은 콘서트에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실제로 딜런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표현이 등장했다가 삭제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같은 날 딜런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는지를 묻자 "물론이다. 가능하다면"이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또 그에게 왜 한림원의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글쎄, 난 여기 있다”라는 다소 모호한 답을 했다고 전해졌다.
밥 딜런을 둘러싼 논란 ; 가수냐 시인이냐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자마자 논쟁은 뜨거웠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10월 13일(현지시간) "훌륭한 미국 음악 전통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낸 밥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지만 곧 밥 딜런이 시인이냐 가수냐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2013년 9월 한림원 종신서기인 페테르 잉글룬드는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노벨문학상 질의응답’ 페이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누구나 될 수 있나요? 음악가나 과학자도요?” 라는 질문에 “아니오.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당연히 문학을 창조해야 합니다.”라고 단호히 대답을 했었다.
1965년 1월 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자회견. “스스로 가수라고 생각하나요? 시인이라고 생각하나요?” 라는 질문에 밥딜런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전 그냥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인데요.”
뉴욕타임즈는 ‘밥 딜런이 수상하면 안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밥 딜런은 유능한 작사가다. 그의 가사를 시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딜런의 가사는 그의 음악과 떨어질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딜런은 작가가 아닌 음악가이며, 그렇기 때문에 노벨상 위원회가 ‘작가’에게 노벨상을 주지 않은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선택”이라고 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스웨덴즈 갓 탤런트’(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가 아니라 ‘노벨문학상’이다라며 비판적인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또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가 딜런에 밀려 노벨 문학상을 놓치게 된 데 대해 트위터 상에서 "아쉽다"는 반응부터 "언젠간 트위터(글)로 (노벨상을)받을 날이 올 것" "로스가 기타를 손에 잡을 것" 등 각양각색의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하면 바티칸 일간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딜러의 노래가사 중 일부는 아름다우며, 전 세대에 영향을 미친 진정한 예술가의 작품이지만, 딜런은 (작가가 아니라)송라이터"라고 비판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노벨의 결정이 돈 드릴로, 필립 로스, 무라카미 하루키 등 진정한 작가들에게는 분명 반갑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인도 출신 영국 소설가 샐먼 루시디는 13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부터 노래와 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다. 딜런은 음영 시인 역사의 찬란한 상속인"이라며 딜런의 수상을 전폭적으로 환영했다. 노벨상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미국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 역시 트위터에 "딜런의 음악은 아주 깊은 의미에서 '문학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인기 공포소설가인 스티븐 킹 역시 "추잡하고 슬픈 (대선)시즌에 한 가지 멋지고 좋은 선택"이라고 트위터에 밝혔다. 그런가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SNS 공식 계정에 올린 메시지에서 "내가 사랑하는 시인들 중 한명인 밥 딜런에게 축하를. 노벨을 받을만하다"고 썼다.
문학의 외연 확대 : 비문학인이 받은 노벨 문학상
사상 최초로 대중음악가에게 돌아간 노벨문학상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지만 노벨문학상은 역대 수상자 명단 자체가 논란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밥 딜런을 제외한 총 113명의 역대 수상자 중 3대 문학 장르인 소설과 시, 극작이 아닌 분야에서 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7명. 독일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1902), 독일 철학자 루돌프 오이켄(1908),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927),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1950), 영국 정치인 윈스턴 처칠(1953), 프랑스 철학자 겸 소설가 장 폴 사르트르(1964), 벨라루스의 르포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다.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윈스터 처칠은 그 자신도 당황했을 정도로 의외의 수상자였지만, 한림원은 “역사가이자 웅변가로서 처칠이 보여준 탁월한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처칠이 당시 영국 총리여서 승전국에 대한 정치적 배려라는 논란도 일었지만, 한림원은 “수년 간 후보로 논의했으나 처칠의 전시 공적에 대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종전 후 7년이 지나 수상자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도에 대한 논란은 노벨문학상에 항상 따라붙는 것으로, 솔제니친, 파스테르나크 같은 소련 작가들이 수상할 때 가장 격렬했다.
‘정글북’의 러디어드 키플링이 상을 받았지만, 톨스토이와 입센, 에밀 졸라는 수상하지 못했다. ‘대지’의 펄 벅은 받고 ‘댈러웨이 부인’의 버지니아 울프는 받지 못해 대중적인 취향에 따른다는 비판도 있었다.
노벨문학상은 문학전문가들로부터 200명의 후보군을 추천 받은 위원회가 1차로 후보 20명을 고르고, 2차에 5명을 가려낸 후 18명의 한림원 위원들이 투표를 실시해 과반 이상 최다 득표자를 수상자로 선정한다. 후보군 명단은 50년간 기밀유지 후 공개한다.
가수이자 시인인 밥 딜런
1941년 미네소타 주에서 태어난 로버트 앨런 지머맨 (Robert Allen Zimmerman)은 밥 딜런이라는 이름으로 1962년 컬럼비아레코드에서 첫 앨범인 "Bob Dylan"을 발표한다.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원제 크로니클스·Chronicles)’에서 미네소타 집을 가출해 무작정 뉴욕으로 온 그는 술집과 카페에서 포크송을 부르며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친구 집과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혔다고 한다. 페리클레스 투키디데스의 역사책, 니콜라이 고골, 발자크, 모파상, 위고, 디킨스의 소설, 단테, 루소, 마키아벨리의 작품, 그리고 푸시킨의 시는 시적인 가사를 쓰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고도 했다. 그런 그가 쓴 노랫말은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1963년에는 'The Freewheelin’ Bob Dylan'을 발표했다. 시적이면서도 정치적인 깊이가 있는 가사와 모던 포크의 간결함을 수용한 이 앨범은 곧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저항운동의 상징적인 음악가가 됐다. ‘Blowin’ In The Wind’ (듣기 https://youtu.be/3l4nVByCL44)은 반전 운동의 대표곡이되었다.
1965년 그는 포크 페스티발에서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다. 팬들은 포크의 배신자라며 달걀과 돌을 던졌다. 하지만 이후 마마스앤 파파스, 버즈 등의 포크 락 그룹들이 인기를 얻었다. 그는 포크와 록 사운드를 결합한 '포크 록'을 창조하며 음악지도자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딜런의 수상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딜런이 오랜 세월동안 탁월한 예술성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는 토를 달지않는다. 딜런 작품의 문학적 가치는 미국 안팎에서 오래 전부터 인정되 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08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전화 사용자의 전화카드 회사 손해배상 소송 판결문에서 소수견해를 밝히면서 "피고가 이익을 취한 것이 없어, 원고에게 물어줄 것도 없다"는 의미로 딜런이 1965년 부른 '뒹구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의 후렴 구절 "당신이 가진 것이 없다면, 잃을 것도 없다(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라는 가사를 인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65년 발매된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revisited)'에 수록된 이 곡은 2004년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에서 '이 시대 최고의 명곡 1위'로 선정됐다.
당시 테네시 대학 법과대학원의 알렉스 롱(Long) 교수는 "국가 최고 권위기관인 연방 대법원이 대중가요 가사를 판결문에 인용한 것은 처음으로, 기념비적"이라고 NYT에 말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하급심 판결에서 대중음악 가사가 종종 등장한 적은 있다. 1981년 캘리포니아 법원은 전문가의 증언이 필요하느냐에 대해,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기 위해, 일기예보 아나운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 역시, 딜런의 노래 '지하실에서 젖는 향수(Subterranean Homesick Blues)'에 나오는 가사다. 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 법원 판결에 노래 가사가 제일 많이 인용이 되는 가수인 딜런은 모두 26회 인용됐다고 한다. 그의 가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그의 작품성을 인정한 미국 프린스턴대학과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은 각각 1970년, 2004년 딜런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2004년 당시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 총장이었던 브라이언 랭은 "밥 딜런은 20세기의 상징적 인물이며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내면이 형성된 사람들에겐 더욱 그러하다"며 "그의 노래 가사는 우리의 의식 일부로 남아있다"고 학위 수여 이유를 밝혔다.
미국 버지니아군사대학의 문학 교수였던 고든 볼 역시 1996년부터 딜런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며 "시와 음악은 서로 연결돼 있다"며 "딜런의 옛날의 음유시인들처럼 둘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계 일각에서는 아직 가사가 시의 범주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도 많다. 미국 유명 소설가 노먼 메일러는 한때 "딜런이 시인이면 난 농구 선수"라고 비꼬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사랑한 밥 딜런
지난해 12월 세계적 권위의 의학학술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은 논문 제목은 '자유분방한((Freewheelin’) 과학자들 : 생체의학 문헌에 밥 딜런 인용하기’라는 이색 논문을 게재했다.
스웨덴의 명문 의과대학 겸 연구기관인 카롤린스카연구소(KI)의 연구진이 1970년부터 2015년까지 쓰여진 생물의학 논문 중, 그의 노래가 인용된 것을 모두 분석해 영국의학저널(BMJ) 크리스마스 특별호에 발표한 것이다. 그 결과 40여 년 동안 딜런의 노래는 무려 213편의 논문에 인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논문 제목에 쓰인 단어 'Freewheelin’ 역시 1963년에 발표한 딜런의 2집 ‘The Freewheelin' Bob Dylan’앨범 제목으로 사용된 것이다.
논문 속에서 딜런의 가사를 찾기 시작한 건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도서관 사서 ‘카를 예르니츠키’였다. 그는 어느 날 연구소 내 과학자 두 명이 함께 논문 제목이 ‘궤도 위의 혈액. 운명의 단순한 장난’이었던 것을 보고, 딜런의 노래 ‘운명의 단순한 장난(Simple Twist of Fate)’을 떠올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예르니츠키와 카롤린스카연구소의 과학자 두 사람은 함께 팀을 이루고 생물의학 논문에서 딜런의 가사가 얼마만큼 인용됐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밥 딜런 홈페이지(bobdylan.com)에서 딜런의 노래와 앨범 제목을 내려받아 세계 최대 의학문헌 소장처인 미국 보건부 산하 국립의학도서관의 온라인 검색도구 '메들라인(MEDLINE)'을 이용했다. 노래 제목 일부가 포함된 문헌은 모두 727편이었으며 이 가운데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밥 딜런 노래 그대로 사용한 것은 213편이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딜런의 노래 중 가장 많이 차용된 노래는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이다. 무려 135개 의학 학술문헌 제목에 차용됐다. 2위는 36개 문헌에 사용된 'Blowin' in the Wind’다. 발표자 국적은 미국이 가장 많았고 스웨덴이 그 뒤를 이었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 과학자들이었다.
딜런 노래 제목이 의학 논문 제목에 처음 사용된 것은 1970년 미국 임상간호학회지 '저널 오브 프랙티컬 너싱’에 실린 'The Times They Are a-Changin'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딜런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 드문드문 사례가 이어지다 1990년대부터는 급격히 늘어났다. 자연과학자들이 딜런의 노래를 이토록 자주 차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이 현상에 대해 60~70년대에 딜런의 노래를 즐겨 듣던 자유분방한 대학생들이 1990년대에 과학자, 의사, 학술지 편집인이 되며 그들의 논문에 노랫말을 인용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밥 딜런은 유명 가수다. 한국에선 팝송 전문 프로그램에 나온 팝칼럼니스트라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포크의 전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밥 딜런을 얘기했었다. 그래서 음악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그의 이름 정도는 안다. 그런 지명도를 고려하면 그가 히트시킨 곡이 많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히트의 기준이라는 미국의 빌보드 차트를 보면 그가 발표한 곡 가운데 1위를 차지한 노래는 단 한 곡도 없다. 10위안에 든 곡도 겨우 4곡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도 거의 없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와 다르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를 나타내는 음악차트에서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어도 밥 딜런은 언제나 팝 음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음악인 1위'로 꼽힌다. 뮤지션들한테는 특히 그렇다. 존 레논은 “밥 딜런이 비틀스의 음악을 통째로 변화시켰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음악이 아닌 문학의 영역과 노벨상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다.